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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뛰기의 유래

등록일 : 2010-06-04
갱신일 : 201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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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뛰기의 유래 , 그네뛰기 전통놀이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1. 그네뛰기의 유래
잡아온 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살을 발라낸다든지, 음식을 만드는 일 등 할 일이 많고 주거가 안정되지 않아 생활이 불안정하여 한가하게 아기를 볼 시간이 부족했을 터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나무사이에 짐승의 가죽을 맨 흔들 침대이다. 이것을 따라하여 변한 것이 그네뛰기가 되었다.
그네에 대한 문헌기록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찾아 볼 수 있으나 그 역사는 더 오랜 것으로 추측이 된다. 현재는 그 성격으로 보아 북방 유목민의 풍속이 중국으로 들어와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스스로 발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고금예술도古今藝術圖》에서 『추천(그네뛰기)은 본래 산융의 놀이였는데, 제나라의 환공이 북으로 산융을 친 후로부터 이 놀이가 비로소 중국에 전해졌다.』고 하였다. 여기서 산융 또는 융적이란, 중국사람이 이웃 민족을 멸시하여 부르는 말로, 한나라 때는 북방 초원의 유목민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추천(그네뛰기)이 본래 산융, 즉 북방의 새외 민족의 풍속으로,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그네뛰기는 융적의 풍속 그대로 한식 일에만 거행되어 왔다.
그네는 북방의 기마 민족들이 성새(城塞)를 뛰어 넘기 위해 몸을 날렵하게 하는 무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동국세시기??에는 북방의 오랑캐들이 몸을 날쎄게하기 위해 한식날 그네놀이를 즐긴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제(濟)나라의 환공(桓公)이 북쪽 오랑캐를 치고 돌아올 때 전래시켰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 나라 문헌상 그네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무신정권시대다. 최충헌이 단오 날 백정동궁에 그네를 매고 문무 4품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들을 모두 모아 사흘동안이나 그네 경기를 베푼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때 그네경기는 화려하게 수놓은 장막과 긴휘장을 둘러친 가운데 행해졌고 주변은 무늬 놓은 비단과 꽃으로 꾸몄으며 은동이에는 얼음을 담고 술을 부어놓았다. 또 술잔에는 이름난 꽃가지가 꽂혀 현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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