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아큐정전 독후감

나의 벗 아큐씨에게 보내는 편지
어제 내린 비 덕분에 여름의 청아함이 더욱 돋보입니다. 안녕하시오, 아큐씨. 나는 조선 경주땅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올시다.
일찍이 유학에 뜻을 두어 추선생으로 응시했으나, 불행히도 합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그저 ‘박생’이라 부르니, 아큐씨도 나를 ‘박생’이라 부르시지요.
이렇게 갑작스러운 편지에 놀랐다면 미안합니다만, 나는 당신이 좋소. 물론 벗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니 거북히 여기진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이 ‘신해혁명이 범국민적 혁명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유는 중국인들 속에 잠재해 있는 아큐정신 때문이다.’라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신과 친분을 쌓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붓을 들었으니, 무례하다면 용서하시오.
인간은 무얼 위해 사는 것일까요? 나는 예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인간은 인…(생략)

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을 바꾸어 보았고. 내가 예학을 하는 목표는 천지 자연의 실상을 환히 들여다보고, 바깥 물건에 끌려서 마음을 옮기는 일 없이, 도의 근원을 지키는 분을 다 하는 것이지, 입신양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지요.
그러자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은 상태가 되었고, 지금은 더 깊이 학문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같이,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들보다 더욱 맑고 깊게 학문을 추구하는 내가 진정한 학자이다.’라는 생각이 좌절한 저에게 용기를 주었고, 이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된 셈이오.
인조때를 배경으로 쓰여진 ‘박씨전’ 또한 실제 청과의 전쟁에서 조선이 패하였으나 박씨의 활약으로 부분적인 승리를 이끌어 내니, ‘정신적 승리’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실제 병자호란의 결과와 다른 허구라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주제의 무거움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가벼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자신들이 실제 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억압과 굴종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지 않았을까 싶소.
이처럼 당신의 ‘정신적 승리법’은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이러한 의미와 그 발상의 참신함이 나를 아큐씨에게 편지를 쓰도록 이끌었다오.
하지만 이제 나는 당신에게 몇 마디 충고를 하려 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맹렬히 비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신과 친분을 쌓고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려고 당신에게 진언을 하는 것이니, 차분한 마음로 읽어 주시오. 먼저, 당신이 정신적 승리법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유의할 점입니다.
정지용씨의 시 ‘향수’의 화자는 고향에서의 과거의 삶을 이상화하여 도회에서의 현실의 삶에 대한 위안을 삼고자 하지요. 하지만 남이 미처 거두지 못한 곡식을 줍는 아내의 고달픔마저도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태도는 치열한 현실인식을 결여한 낭만적 태도일 뿐이오.
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자신의 이상 추구에 실패한 뒤 자살로써 사랑을 추구하는데, 이는 치열한 현실인식이 결여된 채 관념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하십시오
.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혁명관’에 대해서도 얘기하겠소.
아큐씨는 혁명을 공인된 도둑질, 즉 그 동안 자신을 마구 부려대던 힘있는 사람들을 응징하고 그들의 물건을 뺏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혁명은 사회제도가 바뀌고, 인간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게 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오.
마지막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큐씨의 ‘여성관’이오.
비록 나도 예학자이고, ‘남녀유별’에 대해 익히 들었으나, 당신은 여성을 도무지 인격체로서 대우하지 않더군요.
젊은 여승의 매끈한 볼을 잡아당기며 희롱하다가 여자가 필요하다 느껴 부린 행패는 매우 불쾌합니다.
고인이 이른말이 사랑하는 남녀간에도 오륜과 같은 예가 있다고 하였소. 어찌 여자를 미색을 갖추고 남자의 씨를 받는 존재나 요물로만 생각한단 말이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립니다.
아큐씨에게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풀어내니, 나의 가슴 속 역시 밖의 푸른 비처럼 청명합니다.
아큐씨와 내가 막역지우가 되길 바라며 붓을 놓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