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자료 모음 좁은 문

<좁은 문> 자료 모음
■ 제목의 의미
이 소설에서 <좁은 문은 가장 큰 상징어이자 주제어이다. 큰 길과 넓은 대로가 아니라 좁고 협착한 대로로 가야 마침내 진리에 이르는 문을 발견한다는 성서적 가르침이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다.
또한 신앙적 사랑과 세속의 사랑에서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엄숙주의 자체가 좁은 문의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 작가 소개 & 창작 배경 & 창작 동기
앙드레 지드는 1869년 11월 22일에 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유분방하던 현실주의자인 아버지와 철저한 청교도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아버지가 지드의 나이 11살에 세상을 떠나자 이후의 그의 교육을 전적으로 어머니와 가정교사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사촌누이 마들렌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첫 소설<앙드레 왈떼르의 수기를 썼다. 이 소설의 실패와 사촌누이의 구혼 거절, 신앙과 청춘간…(생략)

있을 것이다.

■ 줄거리
제롬은 몸이 허약하고 감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어머니와 가정교사와 함께 살았다. 제롬은 두 살 연상인 알리사와 한 살 아래인 줄리에뜨, 그보다 훨씬 어린로베르가 있는 친척집을 자주 방문한다. 그는 연극적인 발작이 잦은 외숙모인 뤼씰르 뷔꼴랭에게 묘하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젊고 예쁜 어머니 뤼씰르 뷔꼴랭이 집을 나아가 버린 사건과 함께 제롬은 그의 딸인 알리사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알리사와 제롬이 시골의 낡은 교회를 찾았을 때,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명 한다. 제롬은 환영 속에서 좁은 문을 보게 된다. 그의 청교도적인 기질과 알리사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 알리사의 문이 바로 좁은 문이라는 생각을 이끌어내게 한다. 사랑에 대한 그의 갈등도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제롬은 누나 같은 상냥함으로 그의 미래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알리사의 모습을 우연히 엿보게 된다. 알리사는 제롬이 <훌륭한 사람이 되겠죠? 라는 말로 그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알리사는 제롬이 사랑이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보다 훌륭한 것을 추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알리사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제롬 앞에서 사랑의 완성이란 바로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롬의 어머니가 죽게 되자 알리사는 그를 더욱 애처롭게 여긴다. 오히려 제롬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리사와의 약혼이 좀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슬픔에서 벗어난다. 제롬은 펠리시 이모와 함께 머무른다는 구실로 알리사와 부활절 방학을 보낸다. 제롬은 알리사와 많은 대화를 하지만 천진난만한 줄리에뜨와도 오랜 시간을 보낸다. 줄리에뜨는 언니와 제롬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알리사의 묘하게 불안해 보이는 태도는 제롬을 불안하게 한다. 죽음이 어쩌면 우리를 더욱 가깝게 유지시켜 주리라는 알리사의 말이 제롬에게는 골수에 사무칠 만큼 장중하게 느껴진다. 그 여름이 다 끝날 무렵, 제롬은 줄리에뜨와 정원을 거닐면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 답도 깊은가를 과장스레 말한다. 또한 왜 약혼하지 않으냐는 줄리에뜨의 말에 약혼의 형태로 그토록 깊고 진실한 그들 사랑을 얽매이는 것은 모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롬은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알리사가 듣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알리사는 떠나는 제롬에게 약혼을 하지 말하고 선언한다. 그녀는 평온한 그들 사랑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형태를 바꾸지 말자고 하면서, 다만 편지를 나누자고 한다. 제롬은 학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절친한 친구인 아벨 보띠에를 만나 알리사와의 어려운 사랑을 토로한다. 그는 불시에 그녀의 집에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알리사는 그런 식으로 찾아온 그에게 왜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오해를 하느냐고 부드럽게 질책한다. 반면 아벨은 줄리에뜨와의 신명나는 대화로(사실은 그대 화가 태반이 제롬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제롬과 아벨은 자신들 두 커플이 분명 행복하게 맺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즐거움에 젖는다. 크리스마스에 제롬은 줄리에뜨에게서 알리사가 바라는 것은 제롬과 자신이 결혼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다. 그 날 저녁에 신경이 예민해진 줄리에뜨는 기절을 하고, 제롬은 당분간은 그 집에 오지 말 것을 알리사에게 종용받는다. 그리고 줄리에뜨가 자신의 구혼자와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알리사와 제롬의 관계는 그들 사이의 약혼이나 사랑의 문제를 피해 가는 식의 편지를 씀으로서 이어진다. 그러다 제롬은 이탈리아로 징집된다. 군에서 지내는 동안 둘은 깊게 마음을 교류하지만, 알리사의 편지는 점점 절박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제롬이 제대한 뒤에도 알리사와는 어색하게 지내기만 한다. 그러다가 결별을 요하는 알리사의 편지를 받고 제롬은 괴로워한다. 다시 알리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자수정 목걸이를 달고 있지 않은 날 떠나 달라고 제롬에게 말한다. 그렇게 어긋나고 서로를 상처 주는 대화만을 계속해온지 3년이 지난 후, 수척해진 알리사는 자신이 아끼던 목걸이를 후에 제롬의 딸에게 줄 것을 부탁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제롬은 너 이외에는 아무도 결혼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안 지나 제롬은 줄리에뜨에게서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알리사의 모든 번민과 고뇌가 담겨 있던 일기장을 받는다. 10년 후, 줄리에트의 집에 방문한 제은는 아직도 홀로인 채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줄리에뜨의 말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가식적으로 살 수는 없다고 대답한다. 알리사가 죽은 바로 후에 낳은 딸의 대부가 되어 달라는 줄리에뜨의 부탁에 기꺼이 응한 후 막내의 이름을 묻자, `알리사`라고 말한다. 제롬은 감회에 젖어 감사와 기쁨 어린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는다.

■ 감상과 비평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앙적 완성으로써의 사랑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드무니라.-누가복음 제13장

나는 힘써 들어가야 할 그 좁은 문을 보았다. 잠겨 있던 꿈속에서 나는 그 문을 흡사 압연기처럼 상상하고 나 자신이 그 사이로 애써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의 예감이 섞여 있는 그러한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 문은 바로 알리사의 방문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리고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억제하며 내 속에 이기심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고난, 모든 슬픔 너머에 또 다른 영혼이 이미 갈망하기 시작한 다른 하나의 즐거움을 나는 상상하고 예감했다. -좁은 문 中

처음 <좁은 문을 대했을 때, 나는 이 소설에 하나의 자신만만한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신앙적 성취를 위해 사랑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내게는 퍽이나 우울하고 발전 없는 구닥다리 식이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그같은 과장된 엄숙주의와 고상한 속물 주의 정도야 얼마든지 이 소설에게 잡아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얄팍한 계산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접한 <좁은 문은 과장되었지만 순수하고, 고상함을 내세웠지만 그만큼 경건한 소설이었다. 오히려 너무도 순수하고 솔직했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들어 파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랑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정녕코 지상의 사랑에 완성과 만족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알리사와 제롬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회의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어떤 초월적이고 영원한 시공간에 두고 싶어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알리사와 제롬은 철저한 청교도적인 사고방식과 온화한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무의식중에 신앙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들에게 사랑은 그 자체로 신에게로 이르는 <좁고 협착한 길이었다. 그러나 사랑을 실현시킨다는 것은 단지 신의 품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알리사의 유별난 엄숙주의는 좀 더 사랑에 헌신적이고자 하는 제롬을 번번히 실망시켰다.

공부, 노력, 경건한 행위 등 모든 것을 나는 신비롭게 알리사에게 바쳤으며 그녀만을 위해 한 일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다 깨끗한 덕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나는 독한 술 같은 겸양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 나는 어떤 노력이 필요치 않는 일에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좁은 문 中

완전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이들의 눈물겨운 시도는 편지와 대화 속에서 절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사랑을 일종의 방임 상태로 놓아두고자 했다. 사랑을 구속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맹세 같은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야. 알리사를 믿지 못하게 되면 그녀와 약혼을 하지.") 또한 사랑을 의무나 관습에 매어 두기에 그들은 너무나 솔직했다. 이들은 완전무결한 사랑, 순수하고 무고한 사랑-마치 신에 게로나 어머니에게 향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아니,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 민감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 사랑의 첫 번째 장애는 알리
사의 동생 줄리에뜨였다. 발랄한 줄리에뜨의 안에서 사촌오빠에 대한 사랑과 언니에 대한 사랑이 치열하게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줄리에뜨는 자신이 처한 이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혼자와 서둘러 결혼을 해 버리고 만다. 그 다음 두 사람에게 장애의 형태로-사실은 알리사의 일방적인 이유였지만-나타난 것은 도망간 아내 때문에 혼자가 되어 버린 알리사의 아버지였다. 또한 알리사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구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알리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의 구현에 불과했다. 알리사는 참으로 탐구할만한 소설사적 인물이다. 그녀만큼 사랑에 절실하면서도 사랑에 가혹한 여주인공은 드물지 않았나 싶다. 알리사는 한시도 자신을 한 정신의 안일함 속에 두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매우 민감하며, 병적일 정도로 엄숙하고 지성적이다. ① 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죄책감, ② 신에 대한 사랑과 제롬에 대한 사랑을 병행시키지 못하리라는 회의, ③ 자기보다 나이 어린 제롬의 미래와 안위에 대한 걱정, ④ 자신을 극한으로 떠밀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제롬에 대한 사랑, ⑤ 스스로에게 가혹할수록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청교도적인 사고방식, ⑥보다 순수하고 보다 지적인 것―영원 적이고 초월적인 것에 대한 집착 ⑦행실이 좋지 못한 어머니의 결혼 생활에 대한 경원감. 이러한 것들이 사실 알리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혼자서 걸어다닐 만큼 강하지 못해? 하느님께는 혼자 걸어서 도달해야 돼."
"그렇지만 내게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은 너야."
"왜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인도자를 찾을까..? 우리가 서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이 저마다 서로를 잊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좁은 문 中

나의 사랑은 내가 지니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돼, 내 모든 덕행이 거기에 딸려 있고, 사랑이야말로 나를 나이 상의 위치로 끌어올려 주는 것 같아. 또 만일 사랑이 없다면 난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보통의 높이로 다시 떨어져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너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가장 험준한 길도 내겐 언제나 좋은 길이었어. 하지만 제롬, 성스럽게 된다는 것을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거야. -알리사의 편지 中

발전이란 그 같은 이기심, 자기만족, 선에 대한 갈망의 결핍 때문에 그처럼 빨리 정지되고 또 모든 생물이 그리도 멀리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머물러 버리는 것일까?-알리사의 편지 中

"아니야. 제롬. 사랑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엿보게 되었을 때부터 때는 이미 늦었어. 네 턱택으로 내 꿈은 그처럼 높이 높이 올라갔고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어떤 충족감도 그것을 손상시키지 못할 거야. 둘이서 같이 산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해 봤어. 우리의 사랑이 완전치 못한 순간부터 나는 우리의 사랑을 지탱해 낼 수 없을 것 같았어."좁은 문 中

이 행복이 너무나 실제적이고 너무도 쉽사리 획득되었고 또 너무도 빈틈없이 들어맞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영혼을 죄고 질식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이 행복 그 자체인지 아니면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인지 묻고 있다.-알리사의 일기 中

아무리 행복해도 나는 진보가 없는 상태를 바랄 수가 없다. 신성한 기쁨이란 하느님 안에서의 융합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끊임없이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언어의 희롱을 꺼리지 않는다면 나는 진보적이 아닌 기쁨을 경멸한다고 말할 것이다.-알리사의 일기 中

내가 완전을 지향했던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없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오오, 주여! 당신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무엇보다도 저의 영혼을 당황케하는 것입니다. -알리사의 일기 中

덕과 사랑이 융합되는 영혼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사랑한다는 것, 힘껏 더욱 더 사랑한다는 것 외에 다른 덕이라는 게 있을까?..중략...사랑의 힘으로 우리들 두 사람의 영혼을 동시에 사랑을 넘어선 저 건너까지 이끌 수 있다면! 그는 저를 사랑한다는 것보다는 좀 더 훌륭한 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웅적일 수 있는 모든 것이 행복 속에서는 얼마나 위축되고 있습니까. -알리사의 일기 中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알리사의 일기 中

알리사는 매우 영리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자신들의 사랑의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확연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녀 역시 신에 대한 평생의 부채감-원죄 의식이라고도 하는-을 알면서도 영원히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알리사는 이러한 점에서 제롬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녀가 제롬에게 결별의 이유라며 내세운 것들은 하나같이 일시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회의를 그녀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제롬 역시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다만 제롬은 알리사보다는 덜 신앙적이고, 덜 회의적이었다. 제롬은 신과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같은 선상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신에게의 사랑과 알리사를 향한 사랑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사랑과 종교를 한 틀 안에서 재단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제롬에게 가장 절실한 종교는 행복에 대한 믿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제롬은 한 여자에 대한 사랑만으로 일생을 견딜 만큼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알리사는 얼마나 연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감성의 소유자인가. 사실 강한 척 하던 알리사는 가장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알리사는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작은 기쁨을 하찮고 천박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가 순수라 여기는 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다. 우리가 생활과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순수인가. 아니면 그러한 세속적인 것들과의 인연을 끊고 다만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것에서 구원과 행복을 얻으려는 것이 순수인가. 그러나 나는 세속적인 사랑이 훨씬 더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사랑은 그 자체로 아무런 보상이 없어야 한다고 알리사는 말하지만,(우리가 덕을 행하는 것은 미래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의 사랑이 찾고 있는 것은 보상이 아니야.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에게서 스스로의 고행에 대한 보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모욕적인 말이야. 그것은 이러한 영혼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형상인 거야.- 알리사의 일기 中)어쩐지 이는 순수하지 못하다. 신에 대한 사랑은곧 내세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현실은 그토록 쓸모없고 하찮은 것인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창조자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이 세상을 만들 터이므로-에서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게 과연 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인가? 알리사의 병적 신앙심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적 성향과 비극적 사랑에 대한 자기 비하에 심취하여 과장된 절망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처럼 신성하고 그처럼 아름다운 일리사의 신적 사랑에 비해서 우리는 한없이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는 난장이들처럼 보인다. 사랑도 신에 대한 믿음도 자아 성취도 현실에서 이루는 것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비딕에서 나온 바가 있듯이, <영생을 얻어도 이미 인간이 아니어라. 라는 말에 나는 언제나 깊이 공감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알리사의 괴로움과 순수한 고뇌를 왜곡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녀가 그렇게 행동 한데에는 그녀 스스로의 자발성에서라기보다는 그녀 안에 있던 청교도적 관습의 영향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배경 안에서 알리사는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지도 않았을까.
너무도 이른 그녀의 죽음과 불행한 사랑이 나를 안타깝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이다. 나는 현실을 너무나 속되고 비천한 것으로 몰아간 알리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처절하도록 순수하고 티끌만큼도 신을 부정하지 못하던 알리사의 믿음과 소신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를 늘 지배한 것은 <참되고 영원한 영광을 진실로 바라는 자는 일시적인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느니라. 이를 마음속에서 경멸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성스러운 영광을 바라지 않은 자이니라. 좁은 문 中 구절이었다. 그녀의 사랑이 그처럼 비극의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네 곁에서 나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을 느껴. 하지만 들어 봐. 우리는 행복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영혼이 행복 외에 무엇을 더 바란다는 거지?"
"성스러운 것을..." 좁은 문 中

또한 현명한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 시간과 서로의 심적 거리에 따라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팠는지는 다음 대목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항상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제롬과 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곤 했던 알리사였지만, 그녀 역시 감정이 시달리는 한 명의 나약한 여자요,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로 할 이야기는 태산같이 많은데도 왜 그런 거북한 감정, 어색한 느낌, 마비 상태, 침묵 같은 것이 우리를 엄습했을까?..중략... 왜냐하면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단지 커다란 환영에 지나지 않으며 너나 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편지를 쓰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너무나 뚜렷히 떠올랐기 때문이야...중략..네가 내 곁에 오지 않는 순간 나는 마음이 혼란해지며 어색해졌지만 또 그 때 처럼 사무치도록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 본 적도 없었어. 하지만 거기에는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어. 나는 너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야....중략..나는 너의 사랑이 무엇보다도 머리 속의 사랑, 애정과 신뢰에 대한 아름답고 지적인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알리사의 편지 中

나는 이 위대한 거장의 소설을 읽으며 그가 이 인물들을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또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 두 주인공은 그의 분신이자, 그가 가장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의 그림자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사촌 누이인 마들렌과 결혼해 평생 그녀를 순결한 처녀인 채로 남겨 두었다. 이는 과연 완벽한 정신적 사랑의 구현일까.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었던 동성애 적인 성향이나 청교도적 금욕주의의 발현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알리사에게 무조건 화를 낼 수도 없으며, 또한 그렇다고 그녀를 동정할 수도 없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여자 주인공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면서도 가장 회의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더불어 내가 이 소설에 대해 느끼는 경건함과 분노는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소설적 영감을 주었음을 기쁘게 깨닫고 있다. 당분간 나는 고전 이외에 다른 소설은 읽지 못할 것같은 기분이 든다. 수백 년이 지나도 우리 곁에 영원히 생생히 살아 있는이 인물들은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가!

"아! 사랑하는 이의 영혼 위에 몸을 굽혀 우리가 그 영혼 속에 비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마치 거울 속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속에서도 자기 자신에서처럼, 아니 자기 자신 속에서보다 한층 뚜렷이 자기의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기만 하다면 애정은 얼마나 안온해질까! 사랑은 또 얼마나 순수해질까..." 좁은 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