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따라기를 읽고

배따라기를 읽고
배따라기의 작가 김동인(1900～1951)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일본 유학까지 떠나 문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당시 그와 같이 문학에 심취해 있던 주요섭, 전영택 등과 함께 동인지 <창조>를 간행하면서 자연주의적 인생관이 짙게 반영된 작품들을 발표하며 알려졌다. 그는 한국 최초의 순수 문예지 <창조>를 통해 문예 운동을 전개하고 소설의 구어체 문장을 확립했으면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순수문학 정신을 도입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요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수년간의 방탕생활과 사업 실패로 가산을 탕진하고 이혼으로 인한 가정파탄의 불행과 실연이 그에게 <배따라기>나 <광염 소나타>와 같은 작품에 병적 광기, 쾌락주의, 반도덕성을 나타나게 한다. 그는 1951년 전쟁 중에 병사한다.
배따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어느 날 ‘나’는 대동강가에서 배따라기를 부…(생략)

배따라기>라는 작품은 ‘작은 오해가 빚은 비극적 운명’이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가 배따라기를 부르는 사내를 만나 듣는 이야기가 중점적이다. 다시 말해 ‘나’는 아내를 잃고 동생을 찾아다니는 사내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한 서술자일 뿐인지 실제적인 주인공은 그 사내이다. 즉 사내가 자신이 방랑하게 된 이야기를 꺼내는 부분부터가 실제적인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배따라기의 사연은 이 소설의 가장 중점적인 내용이자 핵심적인 모티브가 된다.
둘째, 이 작품이 액자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각 층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이다.
액자소설이란 외부의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내부의 이야기를 내포하는 소설을 말하는데 이 소설은 크게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안에 있는 층은 세 사람(형, 아우, 형수)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고 중간층의 이야기는 형이 사공이 되어 아우를 찾기 위해 방랑하는 과정이고 바깥층은 화자인 ‘나’가 중심이 되어 서술한 부분이다. 이런 액자소설은 독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듯 말하여 친근감을 들게 하고, 내부의 이야기가 ‘나’에게 회상하듯 말하기 때문에 실제 있는 일로 생각되어져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김동인은 배따라기에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며 이 두 가지 장점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아내를 자살하게까지 만든 사건들과 형의 충동적이고 난폭한 성격에 대한 생각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누구나 들 수 있는 의문이다.
왜 형(사내)은 그렇게 난폭하게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아내를 자살하게까지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사내는 아내를 너무 사랑하여 다른 남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걸 보면 질투심이 나고, 심지어 아우에게 웃음을 흘리는 것도 질투가 나 몹시 때려주는 사내이다. 그런 그의 그런 충동적이고 난폭한 성격은 일반인보다는 감정과 충동에 지배당해 사는 정신이상자라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주인공을 이런 인물로 설정한 것일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김동인의 후세 작품활동에는 수많은 시련과 좌절이 바탕이 되어 병적 광기와 쾌락주의, 반도덕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배따라기에서도 그의 이러한 특징은 아내의 자살사건과 아우의 방랑생활을 통한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설정한다. 아마도 그는 이런 사내의 성격이 가산을 탕진하고 후에 가정파탄의 불행을 안게 된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넷째, 사건의 원인과 바깥 서술자인 ‘나’에 대한 생각이다.
줄거리를 보아하니 사건의 원인은 형인 그 사내임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거저, 운명이 데일 힘셉디다’ 나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라는 대사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매듭짓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형의 충동성관 난폭한 성격도, 아내가 자살한 것도, 아우가 방랑하게 되는 것도, 그런 아우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형 역시도 모두가 다 운명이라는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운명이라는 결말을 통해 우리는 이 비극적인 일이 모두 운명과도 같은 일이며 누구 한사람의 탓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서술자 ‘나’에 대해서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사내의 이야기다. ‘나’는 그 사내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서술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등장에서 그가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유토피아를 찾아다니는 청년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역사가가 다 비판하여도 진시황은 불사약을 구하게 하고 아방궁을 짓고 매일 잔치를 즐기며 자신의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서 ‘나’는 많은 백성에게 뺏은 세금과 노동력으로 사치와 향락의 삶을 누린 진시황을 찬사하면서 극단적인 미를 추구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서술자이면서 관찰자인 ‘나’는 예술 지상주의 또는 탐미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배따라기와 같은 구슬픈 곡조와 사내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는 이 사내와의 만남으로 조금은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았을까? 진시황의 삶을 예찬하던 그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우를 방랑하게 만든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아내를 삼킨 바다에서 배따라기를 부르며 흘러가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사내를 보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른 곳으로 떠난 사내의 배따라기를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