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을 읽고 17인의명암

독후감 > 기타
인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을 읽고 17인의명암.hwp   [size : 33 Kbyte]
  36   1   500   3 Page
 
  100%
  등록일 : 2010-07-21

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을 읽고 17인의명암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을 읽고

Ⅰ.필자의 주장

‘전환기를 이끈 17인의 명암’에서는 한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던 격동기이자 전환기의 시대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주요 인물 17명을 다루고 있다. 특히 후삼국 시대의 궁예를 ‘미륵 세계의 건설을 꿈꾸던 이상주의자’로 그리며 그의 인물의 면모와 실체를 밝히려 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승리자의 기록에서 그는 단지 ‘실패한 군웅’일 뿐이었다는 기존의 역사에 대하여 필자는.시대적 요청 앞에 온몸을 내던지며 쓰려져간 ‘역사의 희생물’로 보고 있다.
왕실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태어나자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살해 당할 위기를 겪고 한쪽 눈을 잃은 채 유모의 손에 양육되는 불우한 성장기를 거쳐서 승려가 되었다가 도적의 무리에 들어가 혼란한 세상을 전전하였다. 타고난 자질과 뛰어난 능력으로 마침내 국가를 건설하지만, 아내와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고 가장 신임했던 신하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결국 최후를 맞은 그야 말로 비운의 영웅이다.
필자는 우리가 논란의 요소로 삼고 있던 많은 부분에 대하여 적절한 근거들을 제시하여 궁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궁예가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취한 청주민의 사민 정책 역시 궁예의 정치적 의도,즉 중앙집권정책을 통한 왕권강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애초 고구려계 유민의 지원을 얻기 위해 사용한 고려라는 국호로는 왕권강화라는 그의 의도를 관철할 수 없었고 또한 자신의 이상과도 괴리된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기존의 송악의 호족세력을 일정 부분 견제하면서 독자세력의 기반을 만드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훗날 왕건이 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후 청주인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왕권강화에 대한 의도는 연호사용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그는 ‘무태’라는 자주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내적으로 왕권강화를 지향하고 대외적으로도 국가의 자…(생략)




전환기를이끈17인의명암을읽고17인의명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