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심청을 읽고 효녀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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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5-17

효녀심청을 읽고 효녀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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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효녀심청, 불효녀심청
(효녀 심청을 읽고)

`효녀일까 그렇지 않을까?` 나에게 이런 질문을 가지게 한 심청이..
사실 효녀 심청이라는 고전소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꼭 읽어본 책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접해봤던 일이 있었다. 그 때에는 아버지를 위 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인당수에 빠뜨린 심청이가 정말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자기 목숨을 버리는 희생정신의 효! 말은 정말 그럴싸하다. 하지만 옛날의 나의 존경의 대상인 심청이의 효에 대해서 나는 물음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심청이가 존경을 받을만한 효를 하였을까? 당연히 아버지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린 것은 어쩌면 아버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에서의 심청이의 마지막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심청이 가 생각한 최후의 효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잘 못된 점이 생긴다. 과연 심봉사는 심청이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공양미 300석을 구해 자신의 눈을 뜨고 싶었을까?
보편적으로 부모가 자기신체의 일부를 자식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눈이 안 보이는 심봉사는 심청이를 의지하며 살아왔고, 그 년의 도움이 없다면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버리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효가 아닌 불효에 가깝다 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심청이는 부모보다 먼저 죽으려고 했으므로, 효를 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서 만약에 살아나지 못했다면 심봉사는 자책감과 절망에 빠져 결국에는 눈도 못뜨고 끝까지 괴롭게 인생을 살았거나 죽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심청이었다면 인당수에 빠지는 것보다는 심봉사를 먼저 설득시켜 보겠다. 꼭 공양미 300석을 공양한다해도 눈이 뜬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공양이 300석보다는 아버지 곁에서 의지가 되어 드리며 효도하는 것이 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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