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유전자와 생명
‘이타적 유전자’ 를 읽고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s of Virtue’ 로 번역하자면 ‘선행의 기원’ 정도로 풀이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이타적 유전자’ 라고 번역했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세계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 에 대한 연관성을 부여하여 책이 더 잘 팔리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역자는 제목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이 책의 내용을 제목으로 짐작하기를 더 어렵게 만든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 ‘이타적 유전자’ 라는 것에서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이기적 유전자’ 와 반대되는 개념을 다루고 있으리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 와 거의 같은 것들이다. 다만 서두에서 생물은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반발하여 평생 생물의 이타주의를 연구해 온 크로포트킨의 이…(생략)

행위는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개체들에 대해 일어난다는 것과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이루게 된 경위까지도 설명해 준다. 그에 따르면 일부일처제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자식을 키워 자기 유전자를 후대로 전하기 위한 협력 관계이다. 그렇다면 일부 선진국들에서 자식을 갖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개체가 유전자의 지시에 불복하는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유전자의 지시에 불복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인간만이 갖는 특성일까?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는 ‘죄수의 딜레마’ 를 다루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란 두 죄수 중 한쪽만이 배신할 경우에는 그 배신한 쪽이 이익을 얻는 반면 다른 쪽은 큰 손해를 보고 따라서 서로 상황을 따져서 둘 다 배신할 것을 결정하지만(‘뷰티풀 마인드’ 로 유명해진 수학자 존 내쉬는 바로 이것을 ‘내쉬 평형’ 이라 표현했고 그것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둘 다 협력했더라면 한쪽만이 배신했을 때보다는 더 작지만 둘 다 배신했을 때보다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이르는 말로 각자의 상황을 따져 보았을 때는 배신이 유리하지만 결국은 협력하는 편이 서로에게 더 나은 일종의 모순적인 ‘딜레마’ 이다.
저자는 왜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죄수의 딜레마’ 를 다룬 것일까? 그 이유는 상대가 배신을 내놓을 것을 감수하고라도 협력하는 것을 생물계에서 일어나는 이타주의적 행동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현재 세상에 남아 있는 상당수의 생물은 이런 게임에서 이익을 최대로 얻어냈던 종이 자연 선택되어 남은 종일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가지 전략들이 존재하도록 함으로써 가장 성공적인 전략을 찾아보았고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악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선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전략들이 일반적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생물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타적 행위들, 예를 들면 적을 발견한 새가 경보음을 내어 주의를 자신에게 돌림과 동시에 무리를 피신시키는 것과 같은 행동이 결국은 자기 자신, 아니 자기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근거가 되어 준다. 남는 것은 그 세부 사항을 밝히는 것뿐이다. 참고로 앞의 예에 대한 세부 사항은 그 새가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자처할 만큼 건강하고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포식자가 자신을 노리지 않도록 한다는 고도의 지능적인 이유이다. 물론 새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니 확실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 말 아닌가?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항상 배반을 선택하는 ‘악한’ 전략을 택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결국 ‘선한’ 전략을 택한 존재들에게 밀리겠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협력하려 하다가 배반당하는 것에 비해서는 계속 서로 배반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인데 작가는 이를 없앨 또 다른 요소를 제시한다. 바로 게임 참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참가 자체를 거부당하면 그 존재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를 설명하면서 사회적 추방을 강조하는데 이는 범죄자들에게 징역형을 주는 것이 사회적 안정에 유리하다는 것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저자는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서도 ‘죄수의 딜레마’ 를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일단 자연으로 돌아가 고대인들처럼 사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기술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사냥감과 자원을 포함한 주위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인디언들이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수렵 채집 사회를 보아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만 보아도 종족에 관계없이 모든 게임 속의 개체들은 게임 화면상의 자원을 모두 소모해 버리지 않는가?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환경을 파괴할 것인가?’ 와 ‘서로간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보존할 것인가?’ 의 사이에서 전 인류가 선택해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대부분이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한’ 전략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어 왔듯이 인류 역시 선한 전략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에서 승리, 곧 환경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시뮬레이션을 통한 결과에서는 ‘악한’ 전략들이 ‘선한’ 전략들에게 패하면 사라져 버렸고 다시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는 ‘선한’ 전략이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인간들에서는 ‘선한’ 전략들이 계속해서 ‘악한’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다. 생각해 보라. 이기적인 개체이며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이익을 많이 얻기 위해 전략을 바꾸는 것 정도는 쉬운 일 아닌가? 주위에 선한 개체들이 많을수록 악한 개체들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커지며 따라서 악한 개체들은 계속 늘어나 선한 개체에 의해 축출되는 수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간단히 말해 인간과 환경 문제와 관한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항상 배반자가 존재하며 그로 인해 환경은 계속 파괴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류의 그런 본성은 인류가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멸망을 예견해 주고 있기도 하다.
옛날부터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그에 대해 대강의 결론이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그 결론은 이와 같다. “인간은 그 자체로 성격을 띠거나 하지 않는다. 인간은 영원한 생존을 원하는 유전자의 생존 도구로서 그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최대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나는 이 시점에서 의문을 하나 제기하고자 한다. 유전자는 그 자신의 도구인 생체에 의해 보호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선이나 열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유전자는 생존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셈 아닌가? 유전자가 바뀌어 생긴 변형체는 이전의 것과 비슷하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가 그렇게 살려고 아등바등하여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유전자라는 것은 바이러스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변형되며 살기 위해 이기적으로 다른 세포들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유전자의 생존 목적 역시 바이러스와 같은 ‘증식’ 인가?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다시 이 책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타적 유전자’ 는 이 책의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어휘 자체가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과는 맞지 않고 다루고 있는 내용 역시 유전자라기보다는 개체의 행동을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내용과 게임 이론이 대부분이다(하지만 이것은 ‘이기적 유전자’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원제 그대로 ‘선행의 기원’ 이었더라도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꿰뚫는다고 보긴 힘들지만 ‘이타적 유전자’ 보다는 나았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선행의 기원’ 은 도대체 무엇일까? 작가에 따르면 ‘선행의 기원’ 은 유전자 그 자신이다. 유전자는 매우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이기적인 행동 자체가 선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선행도 그 선행이 일어난 동기가 무엇이든 당신의 유전자가 배후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