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인간복제를 읽고 인간복제를 읽고

인간복제를 읽고..
1997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에서 태어난 최초의 체세포 복제양 돌리(둘리가 절대 아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어른 양의 유방세포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젖가슴으로 유명한 미국 컨츄리 가수 Dolly Parton의 이름을 따 재미난 명칭을 얻게 된 이 암양의 탄생은, 현대 유전공학이 거둔 개가임과 동시에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 토론의 최첨단 소재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해, 대중매체들은 유토피아적 희망과 프랑켄슈타인적 공포가 뒤범벅된 열광적이고도 혼란스런 반응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 생명과학 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저자에게 돌리의 탄생은, 지난 50년간의 생명과학 연구가 또 다른 한걸음을 내딛었다는 작은 증거 - 그것도 벌써부터 예견됐던 ? 일 뿐이다. 그에게는 항간의 이러한 법석스러움이 그저 뜨악할 뿐인 듯하다.
저자는 체세포 복제에 의한 유전적 동일…(생략)

책을 읽었다고 부엌에서 달걀을 가지고 유전공학 실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실험에 대한 대략의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알고 보니 별 것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생명 복제기술의 현주소를 다룸과 동시에 이 기술이 미래에 가져올 문제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연구비에도 불구하고 약 1/300이라는 낮은 성공률을 보여준 돌리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일부에서 염려해마지않는 ??복제인간의 대량생산??은 현재까지는 요원한 일이다. 아기를 만들 생각이라면 아직은 선남선녀가 눈 맞아 불 끄고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전통적 방법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싸고 간편한 셈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짓은 반드시 해 보고야마는 인간의 골치 아픈 속성상, 언젠가는 자신 혹은 타인의 체세포를 이용한 대규모 인간복제 행위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전망한다. 질병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의 치료를 위해서든,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소박한 소망을 위해서든, 영생을 희구하는 얼빠진 독재자의 망상을 위해서든, 열등종족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키려는 사회적 우생주의자들의 음모를 위해서든간에, 인간복제는 ??인간은 오직 목적일 뿐 도구나 수단일 수 없다??는 믿음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성가신 문제를 회피하려는 다소 얍실하지만 아주 실용적인 편법적 시도들도 존재한다.
- 인격이나 인지를 갖지 않은 무뇌아 클론을 대량생산하여 오늘은 간 내일은 심장하는 식으로 뽑아 쓴다면?
- 돼지와 같은 다른 종의 동물에게 인간의 유전자를 대거 주입해 상당 부분 인간과 유사한 형질을 지닌 그 무엇인가를 길러내 사용한다면?
- 세포분열 초기의 배에 조작을 가하여 정상적이라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을 수정란을 특정 장기로만 발달하게 만든다면?
-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실패하거나 혹은 저장되는 잠재적으로 인간이 될 수도 있는 배들이 있다면?

이런 엄청 도전적인 질문들에 대한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다 만나게되는 ??지동설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진화론이 인간을 피조물의 중심에서 밀어냈듯이, 이번에는 생명과학이 인간을 그 자신의 존재로마저부터 밀어낼지도 모른다??는 대목에서는 섬짓한 불안감과 묘한 안도감이 교차한다.

어찌됐건 유전자 조작과 생명의 복제는 오직 시간이 문제일 뿐인 시대가 불행히(혹은 다행히)도 우리 앞에 도래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싫건 좋건 그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과 입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고민은 하얀 가운을 떨쳐 입은 과학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전자 지도 작성과 관련된 내용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설명이 사뭇 난삽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책으로 나올 때 쯤이면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고마는 이 분야의 특성을 감안하면 관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복제송아지에도 맨날 ??영농이?? 같은 심심한 이름 말고 젖소부인 씨리즈를 기려 ??도희??라는 이름을 붙여 주면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