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호두껍질 속의 우주 호두껍질 속의 우주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읽고
스티븐 호킹은 이름만 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책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 책은 바로 ‘시간의 역사’ 이다. 현대의 우주론을 알기 쉽게(라고는 하지만 현대 물리에 관한 개괄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설명하고 있는 ‘시간의 역사’ 는 9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에서 뽑은 1990년대의 책 10권 중에도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론에 관해 쓴 두 번째 책인 이 책에서 전작 ‘시간의 역사’ 를 상당히 의식한 것 같다. 머리말에서 그는 ‘나는 조금 긴 시간의 역사(원문은 보지 않았지만 아마 시간의 역사의 원제인 A brief history of time에 반대되는 의미인 A long history of time이 아닐까 싶다) 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하긴 걸작 ‘시…(생략)

주와 비교하면 하나의 점에도 못 미치는 ‘호두껍질’ 속에 우주가 존재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철학자(사상가라고도 한다) 장자가 한 나비의 꿈에 관한 이야기와도 유사하고 한편으로는 무한히 반복되는 도형 즉 프랙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스티븐 호킹은 고대 과학자들이 그랬듯이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철학자이기도 한 것 같다. 하긴 ‘호두껍질’ 과 같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전체 우주를 추론해낼 만큼 대단한 사람의 눈에는 우리와 다른 것들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자리에 서서 정말 다른 것이 보이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 에는 ‘우리의 미래: 스타트렉인가, 아닌가?’ 라는 소제목을 단 부분이 있다. 스타트렉은 SF 드라마로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문화 산업이라 할 수 있는 TV드라마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실제로 책에 언급하기까지 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그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끌었다는 것도 이유라 할 수 있지만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다른 것들에도 많은 흥미를 가졌음을 이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데 그것은 폭넓은 활동과 경험을 보장하는 교육 제도의 덕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킹이 스타트렉을 언급한 것은 우리에게 또다른 교훈을 주기도 한다. 과학이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서구 사회에서는 산업 혁명 이후로 과학이 생활 속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고 그런 사회적 경향은 문화산업에서도 과학과 관련한 내용이 많이 다루어지는 현상을 불러 와 스타트렉이나 쥐라기 공원, CSI 과학수사대 등을 포함하는 많은 공상과학(SF)물이나 과학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도록 했다. 서구 사회의 아이들은 그렇게 문화적으로 과학에 많이 노출되면서 과학과 친해지고 과학과 관련된 희망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과학은 서구 사회처럼 문화의 한 부분으로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고 단지 딱딱한 교과목일 뿐이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북돋워 주지 못하는 사회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의 원인들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을 다룬 문화 상품들이 성공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그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이미 나왔다. 지난 1990년대 말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카이스트’ 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 모여 있는 대학이었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즉 ‘카이스트’ 를 온 국민이 다 아는 대학의 모습으로 바꾸었던 드라마 ‘카이스트’ 는 어떻게 보면 딱딱할 수도 있는 카이스트라는 대학에서의 생활을 실제 학생, 교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에피소드 구성과 세밀하게 표현된 대학 내의 아기자기한 명물들을 통해 ‘카이스트’ 라는 대학, 나아가 전반적인 과학이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좋은 과학과 관련된 문화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가 바로 ‘카이스트’ 이다. 채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종영된 것이 아쉽기만 하고 하루빨리 제2, 제3의 ‘카이스트’ 가 만들어져서 토요일 낮에 방영되는 미국의 ‘CSI 과학수사대’ 와 같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위에서는 이 책의 수준이 어렵다고 써 놓았지만 사실 복잡한 현대물리학을 이 정도의 수준으로 풀어놓은 것만 해도 스티븐 호킹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를 이해시키는 데 열중한 나머지 내용이 ‘시간의 역사’ 에 비해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 한 권으로 최근 10년간의 학계 동향을 알고 그 이론들에 대해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면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한 것 아닌가? 이제부터는 이 책에서 설명한 현대물리학의 이론들을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설명하려 한다.
먼저 지금은 상당히 대중적인 이론이 된 11차원 시공간에 관하여 알아보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다. 이 중 시간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이 그냥 흘러가고 있으므로(라기보다는 그렇게 보이므로) 우리가 실질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차원은 공간의 3차원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글자들처럼 평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2차원에서 사는 것이 된다. 그런데 11차원의 시공간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10차원의 공간을 사는 것이란 말인가? 이론에 따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3차원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우주 생성 당시 매우 작게 말려서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스크린에 투영된 영화와 같이 막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쨌든 그 7차원의 공간이라는 것은 상상하기에 정말 어렵다. 4차원의 시공간 세계도 제대로 상상하기 어려운데 우리 세상의 높이, 가로, 세로와 같은 방향들이 7가지나 존재하는 세계라면…….
앞 단원에서 말려 있는 차원에 있는 사람(만약 존재한다면)의 눈에는 우리가 막에 붙어 있는 모습으로 보일 거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막 우주론이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 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잠시 언급한 것에 그쳤지만 말려 있는 차원 내에서의 시선을 수학적인 방법으로 추측해 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자들이 다루는 각 분야들을 모두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위의 이론들도 대단한 이론들이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이론들 중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론은 M이론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플랑크 길이의 끈으로 모든 힘은 끈의 진동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는 끈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M이론은 현재 이론물리학계의 화두인 중력을 포함하는 자연계 모든 힘들의 통합을 실현시켜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이론이다. 끈이론은 지금까지 5가지가 제안되었는데 5가지의 이론 모두가 맞는 이론이어서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의 기본 원리가 5개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 때 등장한 M이론은 5가지의 끈이론은 하나의 이론이 형태만 바뀌어 나타난 것들이라 주장하면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M이론은 실제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 수학적인 완벽함은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호두껍질 속의 우주’ 에 나타나 있는 현대 물리학의 매우 어려운 이론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이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자 이상의 수학 실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 스티븐 호킹이 물리학자이면서도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 석좌 수학 교수인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 환자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예정되었던 수명을 훨씬 넘긴 상태이다. 아마 활발한 연구 활동이 그의 수명을 늘려 주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결국 죽게 되겠지만 그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도 많은 것들을 남겼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우주의 모습과 같은 과학적인 사실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인간의 의지야말로 그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내가 ‘프로메테우스’ 스티븐 호킹을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