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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 궁전아파트 앞
사람들. 모두 다 입을 벌리고, 수군거리고 있다.
어른들(1) 오오, 끔찍한 일이다.
어른들(2) 끔찍한 일이야. 오오, 끔찍한 일이야.
내레이션 자살사건 이었다. 우리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할머니 한분이 떨어져 돌아가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끔찍한 일이라고 연신 말하며 내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그렇게 엄마의 손을 잡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내레이션 우리 궁전 아파트는 살기도 편하고, 고급이고, 환경이 좋기로 소문난 아파트이다. 그래서 모두들 궁전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행복할거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행복하다 그렇지만 벌써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두 번씩이나 일어나면서 우리아파트 사람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은 궁전아파트에 사는 사…(생략)
S# 2. 사장님 댁
S# 3. 집
S# 4. (과거회상)집
S# 5. (과거회상) 옥상
S# 6. (과거회상)집
이런 상황에서 젊은 아저씨가 말을 함.
젊은 아저씨 (사람들에게 쯧쯧쯧 혀를 차며)여러분, 지금 급한 건 회의 이름 짓기가 아닙니다. 어떡하면 그런 사고가 다시는 안 일어나게 하는가 하는 겁니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이 소문이 퍼져 보십시오.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건 우리 아파트 값일 겁니다. 아마 한 번만 더 사고가 나면 우리 아파트 값은 당장 똥값이 될걸요.
그러자, 장내는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의 얼굴은 사색이 됨.
그러자 젊은 아저씨, 장내 탁자를 치며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달라고 함
회장 (조금 화난 듯) 젊은 사람, 그것은 회장의 권한입니다.
(웃으며)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내레이션 나는 말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저요, 저요.??라고 말을 했지만, 그런데 엄마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네가 나서려고 하냐며 창피하다고 합니다. 엄마 얼굴이 홍당무가 됩니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도 들립니다. 엄마는 얼굴이 더 빨개지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자, 뚱뚱한 아줌마가 엄숙한 얼굴로 말을 시작한다.
뚱뚱한 아줌마 (엄숙한 분위기로 조금 톤은 낮게)나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노인네들 지키는 것은 노인네를 모신 집만의 골칫거리지만 최고의 아파트 값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자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내레이션 그렇게 뚱뚱한 아줌마는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이사 간다는 얘기, 모두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조금 너무 한 것 같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하다니… 그러면서 그 뚱뚱한 아줌마는 자신의 사고방책을 얘기하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베란다가 허술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런 베란다에 쇠창살을 달자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자 저마다 ??옳소 옳소?? 하며 모든사람들의 근심이 걷히고 뚱뚱한 여자의 의견에 대한 칭찬의 소리가 자자함. 그리고 뚱뚱한 여자는 신이나서 쇠창살 주문을 받겠다며 서로의 주문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서로 먼저 쇠창살을 신청하려 밀치고 아우성이다.
젊은 아저씨 (설득력있게)여러분 침착하세요.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되찾아 침착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쇠창살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젊은 아저씨가 아우성 치는 사람들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외친다.
내레이션 나는 알고 있습니다. 베란다에서 떨어져 그만 살고 싶은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건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걸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내가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있습니다. ??베란다에 있어야 할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에요. 정말이에요.?? 뛰어나가 얼른 얘기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쇠사슬처럼 나를 꽁꽁 껴안았습니다.
젊은 아저씨 (꽤나 설득력 있게)여러분, 우리아파트가 가장 값이 비싼 것은 내부의 시설과 부대시설이 잘된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아야 합니다. 겉모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우리 아파트에 쇠창살을 달게 된다면, 사람들이 과연 무얼 연상할까요. 과연 궁전을 연상할까요?
내레이션 그러자 사람들은 ??감옥이요, 감옥.??, ??세상에 끔찍해라. 감옥이라니……??, ??아파트 값이 똥값이 되고 말 거예요.??하며, 베란다에 쇠창살을 달자는 의견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자 그 동안 잠자코 있던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노교수 (천천히 입을 열며)제 생각으로는 할머니가 두 분씩이나 왜 갑자기 살고 싶지 않아졌나 우리가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분들이 목숨을 끊고싶어 끊었지 베란다가 있기 때문에 끊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목숨을 꼭 끊고 싶으면 베란다가 아니라도
끊을 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자, 젊은 아저씨가 눈을 빛내면서 큰소리로 동의한다.
내레이션 그리고 나서, 노교수님은 할머니의 며느리와 딸을 불러다 그분들이 왜 목숨을 끊고 싶었을지에 대해 아는 대로 대답해 달라고 했다. 교수님은 교수님답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적을 합니다. 지난번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따님하고 같이 사셨고, 이번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드님하고 같이 사셨다고 한다. 두 딸과 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을 뿐 대답을 못하고 있다.
노교수 (똑바로 보며 따지듯이) 무엇을 부족하게 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딸 (눈물을 흘리며)아니오. 그런 일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방 냉장고는 늘 어머니께서 즐기시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옷장에는 비단 옷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옷들을 양로원에기부하셨는데, 열 사람의 노인네가 돌아가실 때까지 입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그분들을 증인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며느리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방에는 전축이나 녹음기도 있었지만. 그분은 늘 불만이셨습니다.
노교수 바로 그겁니다 그걸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교수님이 마침내 유도 신문에 성공한 형사처럼 좋아하며
그 아주머니 앞으로 한 발 다가간다.
내레이션 그러자 딸과 며느리는 손자를 업어서 기르고 싶어 하셨고, 뭐든지 깁고 싶어하셨고, 흙에 거름 주고 김을 매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교수님은 낙담을 하고. 뒤에서 젊은 아저씨가 알겠다면서 말을 합니다.
젊은 아저씨 (해답을 찾는 듯이)이제 알겠습니다.
그분은 고향이 그리워서 돌아가셨군요.
딸 저희 어머니는 이 도시가 고향인데도 베란다에서 떨어지셨어요.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의 딸이 젊은 아저씨에게 말한다.
젊은 아저씨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부드럽게)고향이 시골이 아니어도 마찬가질 겁니다. 도시에서도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예전보다 너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노인들은 예전의 사람 사는 모습이 그리워서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효자라도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문명화된 세상에 돈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건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장내가 숙연해짐.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안함.
내레이션 나는 이번에야 말로 내가 나설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을 맨 마지막으로 막아 줄 수 있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도 아마 그러셨을 것을 나는 내가 스스로 겪었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사람인 데도 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드디어 엄마의 팔에서 벗어나 회장석 앞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꼭꼭 끼여 앉은 어른들을 헤치려니 어떤 아저씨는 어깨를 짚었다고 눈을 부라리고, 어떤 아줌마는 발가락을 밟았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건 말건 나는 반장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의 답을 나만이 알고 있을 때처럼 의기양양 신이 나서 사람들을 마구 밀치고 드디어 앞으로 나섰습니다.
회장 (화가 난 듯 탁자를 치며)누굽니까? 도대체 누굽니까? 이런 중대한 모임에 어린이를 데리고 온 분이 누굽니까?
엄마 (정말 미안한 듯이, 창피한 듯이 )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애가 막내라 버릇이 없어서
내레이션 엄마는 그렇게 나를 치마폭에 싸면서 그곳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회장아저씨도 물론 우리가 나가기를 바랬겠지요.
주인공과 주인공의 엄마는 사장님 댁을 나온다.
S# 3. 집
내레이션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나는 꾸지람을 들음 것 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발표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슬펐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어른들이 귀담아 들어 주었더라면 베란다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일은 미리 막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됬을 것입니다.
S# 4. (과거회상)집
내레이션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때 누나와 형이 꽃을 한송이씩 들고와 내일이 어버이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이 꽃과 가지고온 조그만 선물 꾸러미도 마련해 놓고 내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 날 밤 나도 꽃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꽃은 형과 누나가 만든 것보다 훨씬 못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성들여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통해 하실것으로 생각하고, 선물은 아직 용돈도 받지 않아 섭섭해 하실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버이날 아침.
아빠와 누나는 엄마와 아빠께 뽀뽀를 하고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꽃을 드리려 하는데 형과 누나가 내 차례는 주지도 않고 노래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노래를 모르기 때문에 따라 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아무쪼록 오래오래 아름답고 젊기를
마음 속으로 바랬습니다.
그렇게 누나와 형은 학교에 가고 아빠는 꽃을 단채 출근을 하셨습니다. 엄마도 꽃을 단채, 집안일을 하셨고 나는 놀이터에 나가 놀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싫증도 나고 배가 고프기도 해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려다가 나는 꽃을 보았습니다. 내 꽃은 식당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속에 과일 껍질과 밥 찌꺼기와 함께 버려져 있었습니다.
엄마 (애가 타는 듯이)글쎄 셋이란다. 창피해 죽겠지 뭐니? 우리 동창이나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 아니면 둘이지 셋씩 낳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구나 어쩌다 막내를 하나 더 낳아가지고 이 고생인지, 막내만 아니면 남부러울게 뭐가 있겠니?
내레이션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거짓이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진짜로 사랑했는데 엄마는 나를 거짓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주인공, 말없이 집을 나옴 계단을 올라가 옥상으로 감.
S# 5. (과거회상) 옥상
내레이션 나는 옥상에서 떨어지기 위해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입니다. 밤을 기다리는 동안 춥지도 않았고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달이 옥상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달하고 나하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야외로 소풍 가서 본 민들레꽃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이상해서 톱니 같은 이파리를 들치고 밑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옥상의 시멘트 바닥이 조금 파인 곳에 한 숟갈도 안 되게 흙이 조금 모여 있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흙이 아니라 먼지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날던 먼지가 축축한 날, 몸이 무거워 옥상에 내려앉았다가 비를 맞고 떠내려가면서 그곳이 움푹하게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흙을 찾아 공중을 날던 수많은 민들레 씨앗 중에서 그래도 뿌리내릴 수 있는 한 줌의 흙을 만난 게 고맙다는 듯이 꽃은 샛노랗게 피어서 달빛 속에서 곱게 웃고 있었습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를 내리고,
눈물 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것이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S# 6. (과거회상)집
주인공은 집으로 들어옴. 온 가족이 엉엉 울고 있다. 엄마가 달려와서 주인공을 껴안음
엄마 (주인공을 끌어안고 울며)아무 일도 없었구나, 막내야.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도 더 살지 않으려고 했다.
내레이션 엄마는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반가워서, 말없이 집을 나간 잘못에 대해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나 역시 엄마의 잘못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살아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 것 만 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 일로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아지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없어져 줬으면 할 때에 살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말이나 눈치로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에 그것을 막아주는 건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겪어서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어른들은 끝내 나에게 그 말을 할 기회를 안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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