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daddy fly를 읽고나서 일반독후감 Fly daddy fly

이 시대의 영웅이 된 아버지 - ‘Fly daddy, fly’
마니아들을 수없이 거느리고 있는 일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Fly daddy, fly’는 딸을 지키기 위해, 별 볼일 없는 중년의 아저씨가 생명력 넘치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국내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더 흥미로운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아주 가볍고도 유쾌한 이 소설 속에도 우리가 생각 해 볼만한 것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강력한 동기.
상대방을 증오하며 철저히 부셔버리겠다는 반사회적인 그 동기를 실현하는 소외된 소수의 색다른 접근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어보았다.
주인공 스즈키는 마흔 일곱 살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평범한 직장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스즈키이지만 아내와 딸 하루카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생략)

반 바퀴만 돌아도 턱까지 숨이 차던 중년의 배가 나온 아저씨는 차차 정류장 여섯 개를 버스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강철같이 훈련이 된다.
문제아 일당이 복수를 위해 마련한 자리는 다름 아닌 이시하라가 다니는 학교의 시업식. 전국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이시하라를 칭찬하며 자랑스러워하던 자리였다.
문제아들은 조례대를 장악하고 스즈키와 이시하라를 위한 결전의 자리를 마련한다.
“청코너, 지금까지 수많은 악행을 돈과 권력으로 무마시켜온 추악한 고교 복싱 챔피언, 이시하라 유스케!” “도전자 홍코너, 이시하라의 악행을 용서할 수 없는 의리의 사나이, 우리의 히어로, 스즈키 하지메!”
물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도전자 스즈키를 대하는 이시하라.
그에 두려움을 느낀 스즈키는 그간의 훈련은 모두 잊은 채 이시하라에게 강펀치를 얻어맞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러나 거기서 질 수 없는 스즈키.
자신을 온몸으로 응원하는 문제아 일당의 의리와 사랑하는 딸을 해친 상대에 대한 강한 증오로, 그리고 그동안 새롭게 태어난 체력과 전술로 이시하라를 완전히 제압하고 때려눕힌다.
“이시하라를 무너뜨린 이 팔로, 하루카를 힘껏 안아줄 거야, 그리고 이 멋진 세상으로 하루카를 데리고 나올 거야” 말하며 멋지게 교정을 나서는 스즈키.
스즈키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평생 자신이 그 가족을 단단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에게 벌어진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들.
억울하고 어이없게 폭행을 당한 소중한 딸.
이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은 식칼을 들고 가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과도 바꾸고 싶을 만큼 지켜주고 싶은 딸의 행복이, 그 희망이 짓밟히는 순간, 그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적절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보다 딸이 받은 만큼의 고통을 아니 그 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도록 흠씬 그를 패주는 것이 오히려 더 속 시원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이라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영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볼 수 있다. 미국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에서 심부름으로 식료품을 사들고 집에 가던 흑인 소녀가 마약과 술에 취한 백인 건달들에게 무참하게 강간당한다.
어린 딸이 만산창이가 된 모습을 보고 오열하던 아버지는,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그곳에서 그저 형식적인 재판을 받기 위해 당당하게 법정에 출두한 그 범인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즉시 살인죄로 기소된 아버지의 ‘재판판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법정 영화이다.
흑인 차별이 심한 미국의 남부에서 흑인소녀의 몸과 마음을 짓밟은 두 백인남자의 죄는 그리 중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범법행위이니 만큼 사법적인 처벌의 대상은 될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실제로 당한 고통과 피해에는 너무나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Fly daddy, fly’에서도 가해자는 명문 고등학교 학생에다가, 일본 전국 체육대회를 휩쓸며 촉망받는 복싱의 유망주이다. 그래서 소위 ‘잘나가는’ 이시하라의 뒤에는 그의 수많은 악행을 감싸며 뒤치다꺼리에 급급한 선생님들도 있다. 그에 반해 평범한 샐러리맨인 스즈키나, 삼류 고등학교에서도 내놓은 문제아 일당이 있다.
그래서 하루카가 억울하게 당한 폭행은 이시하라의 돈과 권력 앞에서 축소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스즈키가 이 문제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그저 가벼운 다툼 정도로 무마되고, 최소한의 수준에서 처벌이 이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카의 상처와 그런 하루카를 지켜주지 못한 데서 오는 스즈키의 자책과 상실감이 보답 받았을까? 이 상황에서 사법적 처벌이 아닌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스즈키를 코치하는 고교생들의 접근법은 매우 색다르다.
대결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방에게 맞설 수 있도록 최고 수준의 동기를 일깨우고 신체적인 약점을 초월하여 상대와 대등한 위치에서 겨루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딸이 병상에 누워 침울해 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나약한 아빠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딸을 괴롭힌 악당을 그 보다 더한 힘으로 무너뜨리고 ‘다시는 내 딸에게 접근하지 마. 알겠어?’
하며 속 시원하게 협박해 줄 수 있는 아빠로 말이다.
누구도 대항 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둘러서 라든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써가면서 이시하라를 처벌 할 수 있는 그 어느 아버지보다 스즈키가 더 솔직하고, 용기 있고, 통쾌하게 보이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