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고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고
제목은 작품의 얼굴이다. 얼굴이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듯이 제목은 작품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할 때 우리는 저자의 거주지와 직업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현재 빠리에 살고 있고 택시운전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제목을 토대로 해서 책의 내용이 무엇일까 어림해 본다. 빠리를 소개하는 관광서인가? 아니면 다른 곡절이 있는 것일까?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제목은 저자가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정보만을 지시할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제목은 저자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야. 빠리의 택시운전사라고. 머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가슴은 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머리를 써서 살아야 한다는 지식인적 사명감으로 가득 …(생략)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한다. 노동 현장이 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이지만 그에게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명 이후 택시운전은 의식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경제적 어려움은 그를 인텔리적 타성에서 벗어나 택시운전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끝내 더욱 돈을 벌 수 있는 개인택시 운전사의 길을 포기한다. 이제 택시운전사는 일상의 직업으로 변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글을 읽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의 지식인`은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된다. 하지만 그의 실존은 여전히 `서울의 지식인`에 머무른다.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되기 이전, 그의 몸과 마음은 증오로 가득 찬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 군사독재에 저항해야 한다는 지식인적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망명 이후 그러한 기회조차 박탈당하지만 그는 남민전 동료들에게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채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새로운 상황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6월의 어느 토요일 밤, 그는 텅빈 빠리를 택시로 신나게 달린다. 어느새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른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었다. 눈물을 흐리며 그는 자신의 삶을 확인한다. 그 눈물은 마지막 눈물이어야 했고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것은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새로운 실존을 마침내 가슴으로까지 받아들이며 흘리는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