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
이 소설, 내 문학사상에 또 다른 혁명을 일으켰다. 인간을 생물 화한 소설은 처음 보기 때문이다. 마땅히 읽을 것이 없어 학급문고를 뒤지던 중 얼떨결에 손에 잡힌 책에 그것도 한 부분으로 들어있는 이 소설이 내 문학방 한 곳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사실 이름도 못 들어본 작가 이름에 다만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것에 일단 꺼내긴 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제목이 상당히 내 눈길을 끌었기에 일단 펴본 것이었다.
여기서 주인공인 나는 아내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다. 보통 이런 행복한 생활을 좋아하는 나는 서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피멍. 첫 문장부터 나오는 별로 좋지 않은 단어에 마음 한쪽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느낌이 올라왔다. 그렇게 둘은 사이 좋았다. 아내가 올해 스물 아홉 이 된 것을 보니 아마 신혼인 것 같았다. 이렇게 읽다가 갑자기 아내가 옷을 벗고 베란다로 나…(생략)

는 것을 눈치채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뒤로 아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살기 싫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는 것. 보통병원으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그는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서도 여전히 이상이 없다고 판정 받는다. 아니, 이상을 못 찾겠다고 판정을 받는다. 아내는 말수를 잃어 갔고 그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가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것을 느낀 후 좋지 않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가 불길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현관의 문을 열고 보자 현관에는 구두, 운동화, 슬리퍼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고 전기밥솥 속에는 오래 전에 해놓은 밥이 반 공기쯤 말라 붙어 있고 호박이며 시금치 같은 찬거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또 설거지도 되어 있지 않았고 세탁물에서 썩는 냄새까지 났다. 완전히 엉망이었다. 중요한 것은 안방에도, 화장실에도, 다용도실에도 아내는 없었다는 것이다. 소리내어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의 갸날픈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아내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간다. 아내는 쇠창살에 무릎을 끓고 손을 벌리며 있었다. 몸은, 몸은 진 초록색이었다. 난 이 대목을 읽은 순간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이 진 초록색이라니……. 처음에는 난 병 말기나 된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식물을 나타내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이 소설에 대한 왠지 모를 대단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완전히 식물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종결되고 아내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나온다. 거기서 그녀가 얼마나 세상을 살기 싫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이 더럽고 추잡한 세상에 벗어나고 싶어 매일 같이 남편을 졸라 밖으로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이다. 매일 같이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에 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을 쳤지만 이 세상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결국 꿈에서까지 자신이 미루나무가 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겨울이 돌아오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 점점 아내의 몸이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난 그 신기함에 숨을 쉬지 못했다. 점점 아내의 몸은 추워져 스웨터를 꺼내 입고 허벅지에서 잔뿌리가 무성하게 나오며 가슴은 검붉은 꽃이 피었다. 그리고 눈은 사라져 버리고 아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그는 화분을 사 아내를 심었다. 아내의 아랫도리에서 열매가 나왔다. 갑자기 수많은 씨가 나왔다. 그리고는 결국 그렇게 지고 만다. 그는 두 발 동물이었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몸을 만져 본다. 딱딱하다. 꺼칠꺼칠하다. 그러나 아내의 손과 머리카락에서 느껴오는 온기는 느낄 수 있었다. 아, 슬픔보다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주인공은 나온 씨를 화분에 심는다. 그리고는 봄이 되면 아내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 감동적이다. 내가 이 소설을 다 일고 난 후 뱉어낸 말이다. 지금까지 읽어본 시나 산문은 거의 다가 식물을 의인화하였다. 그리고 난 그런 것을 읽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을 식물로 표현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식물이 되어가고 딱딱해져 가며 멈춰져 가는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슬픔보다는 본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백 편의 자연을 보호하자의 주제를 가진 소설보다 이 한편의 소설이 자연을 다시 보게끔 만들었다. 작가가 자연을 여자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로 표현한 이유가 아마 우리들이 아끼는 존재이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아마 내 머릿속에 며칠 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