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를 읽고 나서 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

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
내 기억속에 남는 구절이 하나 있다.
"천천히 가그라, 꼴찌도 괜찮여. 서둘다 자빠지면 너만 다쳐. 암만 늦게 가두 네 몫은 따로 있능겨. 앞서간 애들이 다 골라간 것 같어두, 남은 네 몫이 의외루 실속 있는겨, 잉규야."
이 말은 운동회 끝나고 돌아오는길에 8명 달리기에서 8등을 한 손주 녀석에게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이야기이다.
남보다 빠른것에 또는 일등하기를 재촉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등수를 매기고 남보다 앞서는 것을 좋아하는 현실이 싫다.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서 내려온 방앗간집 손님으로 온 형들과 바닷가에 물놀이 하러 가면서 교복입고 나서는 잉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정말 웃겼다.
물놀이 가면서 경호에게 손목시계를 빌려차고 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버스터미널에서 급하게 볼일 보다가 그 어둡고 깊은 변소에 빠트리고 말았…(생략)

그런 아버지가 또 어디있으랴... 똥구덩이 화장실에서 건져 올린 다섯시 반에 멈춰버린 시계와 함께 건져 올려진 잉규의 명예 회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값지고 소중한 것일 것이다. 아직도 다섯시 반에 멈추어져 있는 시계...
“매사가 다 그러허니라. 머시냐, 암만 큰일도 시작은 다 조맨한거여.”
“공부도 그런겨. 두고 두고 맨날 쪼맨씩 허다보면 나중엔 큰 공부가 되는겨. 많은걸 알게 되는겨.” 라고 아들 녀석에게 일러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정직하고도 소박한 이야기는 입으로는 다 전하지 못할 그 무엇이 담겨져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