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 죽음으로 맑게 승화한 불꽃 같은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까지 영화와 연극으로 제작되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작품이다. 배우가 누구였든, 감독이 누구였든 간에 작품 속에서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두 명의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다. 로미오가 눈 먼 사랑의 포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줄리엣은 당차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로부터 나와서 사랑을 쟁취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이들 두 연인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하여 비극으로 운명을 마감한다. 모든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만남은 아주 우연히 시작된다. 로미오가 사모하는 여인 로잘라인을 보기 위해 숨어 들어간 연회장에서 우연히 줄리엣을 만난 것이다. 그 순간 로미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내가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 천만에, 그것은 거짓이었어. 오늘밤에…(생략)

안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약을 받아든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약을 단숨에 마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미오님, 기다리세요. 제가 갈게요. 이건 당신을 위한 축배.” 세상 그 무엇도, 불안한 공포와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의 대상인 로미오가 없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그녀의 의지 앞에 우리는 숨마저 죽이며 불안을 잠재운다. 그렇지만 비극은 언제나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며 자기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치달아 간다. 그것은 예정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듯이.
줄리엣의 죽음을 목격한 로미오의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저 깊은 수령으로 안내한다. 로미오의 절망이 마음속에서 맑은 눈물을 자아내고, 그의 아픔이 날카로운 수십 개의 칼이 되어 가슴을 저며 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미오가 죽는 순간, 숨죽이며 지켜보던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를 따라 함께 죽음을 맛보게 된다. 그 때 죽음을 맛보지 못한 독자라면, 로미오의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며 슬퍼하는 줄리엣의 모습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슬픔을 짜릿하게 느낄 것이다. 싸늘하게 얼어 있던 우리의 심장도 다시 그 뜨거운 피를 끓이며 눈물을 퍼붓게 만든다.
마지막 순간, 날카로운 단도가 줄리엣의 심장을 관통하며 뜨거운 피를 분수처럼 뿜는 그 순간, 우리들의 심장에도 얇고 날카로운 수십 개의 칼들이 박히는 느낌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 고통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들은 수십 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그들의 아픔을 겪어 낸다. 그리고 죽음으로 맑게 승화되는 그들의 사랑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잠에서 깬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면, 아마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가득 들어찰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하나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오직 ‘사랑’을 위한 뜨거운 불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