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잡이를 읽고 나서 매잡이

매잡이
저자 : 이청준
출판사 : 민음사
우리 나라에서 3대에 걸친 떡장수의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된 일이 있었다. 어떤 직업이라도 그것을 대를 이어 가면서 정성을 다해 일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직업에 대한 애정과 긍지, 철저한 직업 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는 정성을 모두 쏟으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마음으로 일해 나아가는 정신은 장인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대량 생산 체제의 사회에서는 장인 정신이 퇴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옛날에는 모든 일이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바쳐 온 장인의 손과 머리와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사람을 장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매잡이`에서는 소설을 쓴다고 하면서 한 편도 쓰지 못하는 민태준과 사냥을 하지 못하는 매잡이 곽서방이 등장한다. 그들은 얄팍하게 시류…(생략)

들어 있을 때이다. 아닌 밤중에 곽서방이 부른다기에 헛간으로 달려가자 곽서방은 자기 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음 깊은 민 선생에게 전해주겠냐며 숨을 거둔다.
그의 장례를 거둔 다음부터 소년 중식은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소년 중식은 매를 데리고 어디론가 마을을 떠나버린다.
매잡이란, (소설의 내용에 따르자면) 일부 산골 등에서 길들인 매로서 산꿩 등을 잡아 생계를 도모하는 사람을 이른다. 요즘 같은 산업 사회에서는 이미 그 자취마저 사라질 형편에 처해 있는(또는 진작 사라진) 종사자이다. 매잡이 곽서방의 노력은 문명 속에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우리 것에 대한 애정 어린 향수와 수호 의식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사라져 가는 풍속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과 그러한 풍속의 현대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은 곽서방과 민형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풍속의 미학과 타락한 현실에 저항하고 새로운 진실을 찾고자 하는 치열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매잡이 곽서방과 민태준은 추구하는 가치관의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곽서방은 사라져가는 풍속을 고집하면서 죽어가는 참된 장인 정신을 지닌 사람이다. 민형도 타락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다가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죽어가는 또 다른 장인 의식의 소유자이다. 그 둘은 진정한 장인적인 가치를 고집스럽게 추구하지만 타락한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갈등하다가 마침내 죽게 된다.
현실적 입장에서 볼 때, 매잡이 곽서방은 효용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 착오적 인물이다. 곧 그는 전근대적 사고에 얽매어 있는 인물이며, 매라는 존재는 그가 그와 같은 세계에 얽매이게 하는 매개체이다. 그가 매잡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의 세계를 포기하고 삭막한 현실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끝내 매잡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옛것을 지키려는 곽서방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민태준은 좋은 소설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소설로 완성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그가 수많은 소설 소재들을 가산을 탕진하면서 모으지만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는 것은 민태준이 재능이 없어서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소설 〈매잡이〉는 소설을 쓰지 못하게 만든 시대 상황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장인 정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매장 당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가 추구하는 전통적인 가치는 그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매잡이〉에서 곽서방을 제재로 삼은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기계에 의해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옛날과 같은 장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장 소중했던 옛것은 버리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하는 시류는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옛 장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 가치는 오늘날에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매잡이 곽서방과 민태준의 정신은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사고가 아닌 고귀한 유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사회는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