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를 읽고 소설 목민심서

소설 목민심서
500여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 여유당 전서의 저자, 정약용.
국사 교과서에서 익히 볼 수 있었고, 볼 수 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등의 여유당 전서의 저자는 정약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험에 출제될까 염려(?)하여 정약용은 남인 시파에 속한 정치가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등의 방대한 저술인 여유당전서를 지은 인물이라고 외워 버린다. 그 속에는, 남인 정치가 정약용과 실학자 정약용, 시험문제 정약용이 있다. 그렇지만, 국사 교과서의 <숙명>인지, 그 속에는 <인간> 정약용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수는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찾을 겨를이 없는 것일 테지만.
<소설 목민심서>를 우연히 찾은 것은, 중학교 1학년의 어느 여름날이었고, 비로소 나는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틈만 나…(생략)

고 그의 모든 것에 사랑이 묻어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과 누구보다도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 였다. 존경과 동질감을 동시에 품게 해버리는 그의 인간적 매력의 원동력은 그의 <사랑>, "뜨거운 가슴"이라고 확신한다.
그 시대에도 애국하는 자는 있었고, 애왕하는 자도 있었다. 그 시대의 "집권 야당"인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나, "무력한 여당"인 남인 시파의 거두 체제공 이라든지, 애국하는 자는 정약용 말고도 있었다. 남인 시파의 다수, 노론의 젊은 층들도 "애왕"이라는 말에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친한 벗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며, 부자지간의 정이 각별한 사람들도 조선천지에 넘쳤을 것이며, 정조의 학문사랑으로 <애학>의 마음이 두터운 자들도 많았다. 운우지정을 나누고 그 정을 간직하는 사람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갖춘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없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적은 수의 <모든 것을 갖춘 자>들도 나에겐 정약용의 큰 모습에 비하여 그들은 작아 보인다. 어쩌면 정약용이 더 훌륭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애"와 "사랑"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두 단어는 어감은 다르나 뜻은 똑같이 `사랑`이다.
허나, 나는 다르게 본다. 어감이 틀려서 일수도 있고, 그리고 표의문자 단어와 표음문자 단어의 차이를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애"와 사랑은 틀리다.
"애"가 이상하게 타의적인 사랑이라는 냄새가 나는 것은 왜일까. "꾸민다"라는 느낌도 든다. 분명 사랑하지만, 사랑함은 확실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함>인 `사랑`이다. 그리고 조선에 <애>를 행하는 자는 많았으되, 정말로 "사랑"을 했던 사람은 정약용 한명 뿐이었다. <사랑>을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대상에 완전히 매료되고, 오직 그 <대상물>만을 알고 싶어하고, 좋아하고, 계속 우러러 보는, 그러면서 심지어는 <궁극적으로도> 자신이 아닌 `대상`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때로는 따끔한 충고나 수정을 가하기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은 <애>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다.
<애국>과 <나라 사랑>은 분명히 틀리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하자 떠드는 건 매 한가지고, 애국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배움을 소중히 생각하자느니, 친구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똑같이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조선은 유교를 통해 그걸 <강조>한게 아니라 <강요>를 하였고, 한국은 <법률>과 <관습>으로 <강조>가 아니라 <강요>를 하고 말이다. 정조시대의 심환지나 체제공의 <애국>은 결과적으로, 정치암투밖에 될 수 없었고, 오직 <자파의 애국>이고, <상대의 매국>일 뿐이었다. 한국이라고 뭐 다른가. 남한에도 북한에도 애국은 많지만, 남한의 애국이건 북한의 애국이건, 한쪽의 애국은 한쪽의 국보법 위반이나 조선노동당 규약 위반이 될 뿐이 아니던가. 애국과 나라사랑의 틀린 점은, 애국은 한쪽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나라사랑>은 모든 이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정약용은 <애국>이 아닌 <나라사랑>을 한 인물이었고 말이다.
우린 어떠한가? 우린 <나라사랑>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고, <애국>을 "강요"할 뿐이다. 말끝마다, 어디서나 <애국>을 강요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운운이며,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운운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선택과 <국가공익>이 충돌하면, 자유/행복 보다는 <공익>을 취해야 하고, 안하면 매국노다. 어찌 그리 모순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지. 애국하라고 <강권>하고, 군대가라 <강권>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을 재판에 회부하고 자신의 자유로 국적을 버린 것 뿐인 사람을 아예 입국금지를 시켜버리면서 그걸 당연시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버려놓고, 무슨 자연스레 우러러 나오는 <나라사랑>을 바라고, 하물며 무슨 <애국>을 바라는 건지. 별다른 행사도 아닌데도 국민의례를 해야하고, <자랑스런 태극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이란게 자주적 동물이라, 그렇게 <자랑스럽다>라고 세뇌시켜 본다 한들, 오히려 그 허울좋은 <국민의례>도 따라하지 않게 되는 것을. 사람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동물인지라,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 한, 거기에 대해 따르지 않는다. 하는 시늉만 할 따름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되지도 않는 세뇌를 시키면서 국민들을 애국가만 나오면 가슴에 손 올리는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어 놓고는, 나라사랑을 바라고, 애국을 바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하면서도 그저 남 시선때문에, 억지로, 그리고 살아가면서 이용해 먹을려고만 해서 "우정"을 논하고, 오직 지식을 위하여, 출세만을 위하여 "애학"을 논하지 않는가.
조선시대라고 뭐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유교, 그리고 <주자학>이라는 것은 거의 2~300년을 애국과 애왕을 <강권>하고 있었다. 다행히 정조시대는 이승만 이래로 썩은 내가 나지 않는 자가 없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명군이 있었고, 명신이 있었다. 정조는 <애민>을 한 것이 아니라 <백성사랑>을 한 임금이었고, 그 <사랑>을 보고 배운 정조가 유달리 총애를 한 정약용이 어느 순간 저절로 "사랑"의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정약용은 나에게 한없이 위대한 존재로 보인다. 정조와 정약용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애국>을 외칠 동안 그들은 <나라 사랑>을 외쳤기 때문이 아닐까. 애국은 반쪼가리 사랑일 따름이지만, 사랑은 일부를 제외한 거의 전체의 칭송을 받는 행위다. 그리고 전체의 칭송으로써 "사랑"은 <아름다움>을 전체에 환히 발한다.
정약용의 `사랑`. 억울하게 18년을 귀양갔어도 나라를 위한 `사랑`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을 지어냈고, 학문을 "사랑"하여 강진에서의 고된 귀양살이에도 다산초당에서의 후학양성에 매진하였고, 추사 김정희를 제자로 받아 들였다. 자신을 배신한 이기경에 대한 변치 않는 우정은 친구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이었고, 자신의 아들과 딸에 대한 사랑과 유배생활동안의 또 다른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도 변치 않은 본처에 대한 정, 이 모든 것들은 암암리에 강요된 <애>가 아닌, 진심에서, 스스로 우러나온 <사랑>이었고, 스스로 자기만의 모습을 드러냈기에, 아름답고 훌륭하다.
물론 이 소설에선 정약용만 나오는 건 아니다. 이기경의 심적 고뇌도 나오고, 정조와 노론세력의 대립, 세도정치의 시초인 홍국영, 정약전의 유배와 자산어보 집필장면도 나오며, 주문모 신부 사형등과 신유박해등을 포함한 기독교 박해도 나온다. 그렇지만, 역시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정약용은 <인간>이었고, <사랑의 인간>이었으며, <인간美 넘치는>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의 작가인 황인경씨를 존경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종교>보다 <인간>을 위에 둔 집필태도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정약용이 배교자고, 한때 기독교인들을 배교시켰다고 아무리 비난한들, 정약용은 <기독교인 정약용>이 아니라 <기독교를 한때 연구했던 정약용>이고, <학자 정약용>이고, <인간 정약용>이다. 카톨릭도 사실은 본디오 빌라도가 유태인 장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저기 먼 흑해나 아나톨리아 쪽으로 예수를 유배만 보내고 사형시키지 않았다면, 카톨릭은 지금껏 팔레스타인과 아나톨리아 일부의 변방 종교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런 것이 "종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중심으로 둔 황인경씨의 집필 태도는 소설의 흥미를 배가시킴과 동시에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여담으로,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정치가였던 정약용을, 그리고 정치 일선에서 완전히 은퇴해 버렸음에도 나라를 위한 충언, 충심을 담은 책을 지었던 정약용을 본받을 사람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일반국민이다. 정약용이 순조시대부터 비판하고, 삼정의 문란에 대하여 논하고 국정에 대하여 개혁을 촉구했다. 우리 국민은 뭔가? 정치에 참여하기는 커녕, 그저 욕만 할 줄 안다. 냉소만 하고, 무관심하기만 하면서, 그런 참여의식 제로인 자신들의 원죄는 돌아보지 않고, 그저 정치인들 욕만, 정치가 어쩝내, 썩었내, 어쩌내...정약용은 정치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고 참여를 하였지만 그것은 비판이지 비난은 아니고 욕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고작 책 5권 읽고, 정약용의 저서인 목민심서와 경세유표와 아방강역고만을 읽어보았댔자, 500여권의 저서를 지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족적, 너무나도 큰 족적을 남긴 정약용의 <인간 자체>를 이해하였다고 하기에도, 또 이해하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도 10년이나 탐구에 탐구를 거듭했어도 파악이 어려웠던 <인간 정약용>이다. 나같은 둔재야 하물며 오죽하랴.
나는 그저 정약용이라는 위인에게서 배울점이라도 얻을 뿐이다. 어찌 그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고보니 나에게 요구되는 걸 내 스스로 찾는 다면 내가 정약용의 정치이념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 정약용>의 면모를 들여다 보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건 너무 어렵다. 나에게는 이 소설에 배어나오고 있는 정약용의 실천적인 면과 가족적인 면, 이 2가지밖에는 현재로서는 배울만한 수준이 안되었다. 나란 인간이 말만 앞서는 인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또한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가 소원하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몸소 밭을 가는 정약용의 모습,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이요,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약용의 자식사랑. 아버지라면 거의 누구나 자식을 사랑할 것이고, 정약용은 그런 모습 중의 하나를 나에게 보여줬다. 결국 나는 그런 "나의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거부하고, 그저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매정한 놈>이다. <불효자>가 아니라 <매정한 놈>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그저 <사랑>을 할 수 있는지, `깊게 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깊게 살고 싶다. 소설 목민심서의 정약용을 보니, 난 아직 얕다. 얕고, 비좁다.

글쎄, 나는 사학과 교수의 꿈을 이룰 수 있어도 나 스스로 깊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다 살아놓고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의 우상은 정약용과 레온트로츠키고, 퍼스트는 "인간 정약용"이다. 내가 이들을 우상으로 삼아 얼마나 배우고 능가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세상 어딘가에서 60억 인구를 끊임없이 스토킹하고 있을 신만이 알 수 있겠지.

이래저래, 나같은 둔재가 이렇게나 한 책에 대하여 느낀 점이 많다니, 소설 목민심서는 양서의 조건은 충분히 갖춘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