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배흘림기둥 무량수전

한국미의 숨결을 느끼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첩첩이 쌓인 산들과 고풍스런 정자. 아주 어릴 적부터 수없이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견학으로 이런 곳엘 많이 다녔었다. 이런 곳엘 가면 나는 학생들 중에서도 그 곳에 적혀 있는 표지판을 보고 열심히 필기하고,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 주는 카탈로그를 받아 집에서 감상문도 열심히 썼던 쪽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득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견학하고 관찰했던 수많은 것들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들은 몇 개 건물의 이름정도... 돌아보니 나는 단 한번도 이것들의 의미를 알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알지 못하는 그릇과 집들과 탑들과 경치는 지금 나에게 그저 의미 없는 희미한 장면일 뿐이다. 그것들의 이름과 의미를 알 수 없으니 몇 번을 보더라도 기억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그것들이 가진 오묘한 아름…(생략)

아름다운 능선의 각도 속에서 너그러운 자태로 소박하게 단칸의 무량수전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대표적인 한국미를 자랑한다. 멀찍이서 바라 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보아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 너그러운 자태이며 신경질적이거나 거드름이 없다. 이는 흡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 나라 서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이 부분은 무량수전을 묘사한 부분이다. 무량수전을 묘사한 부분은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 중하나이다.
또,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고려 청자에 관한 부분이다. 그것인 내가 고려 청자를 닮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 청자의 가장 큰 특징은 청자 특유의 비색과 청자 특유의 무늬이다. 비색은 높고 푸르고 또 맑은 고려의 하늘의 색깔을 닮았다. 다만 이 책이 흑백이어서 고려 청자의 비색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청자를 장식하는 고고한 학의 자태와 흰 꽃구름은 고려 사람들의 정신을 닮았다. 특히,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라는 것은 고려청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품이다.
국사시간에 보면 삼별초는 몽고에 끝까지 항쟁했으며 강감찬 장군은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씩씩한 기상을 가졌던 고려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나는 이렇듯 씩씩한 마음을 가진 고려 사람들과 고려 청자를 닮고 싶다.
고려 청자와 대비되는 것이 조선 백자이다. 조선 백자는 깨끗한 흰 바탕 위에 검정 단색 그림이 그려져 있다. 조선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했나 보다. 백자 달항아리는 아무 무늬 없는 깨끗한 흰 자기이다. 또한 무늬 있는 자기들도 굵직한 검은 단선으로 되어있다. 이는 흡사 살갗이 맑고 눈이 서글서글 시원스럽고 속이 탁 트인 젊은 조선 여인을 상상하게 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선의 회화 작품들이다.
첫 번째로, 조선 전기의 회화와 겸재 정선의 그림이다. 이들의 그림의 대부분은 산수화로, 산천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그 정기를 한데 모으고 있다. 가만히 귀기울이고 앉아 있노라면 바람소리, 물소리, 나뭇잎소리, 지저귐 소리까지 전해져 올 듯한 풍경 속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려진 사람은 언제나 고요함을 물씬 풍겨준다.
두 번째로,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조선 후기의 회화이다. 이들의 그림의 대부분은 풍속화로, 구수한 풍토 감각과 민생의 멋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소박한 주제와 허례 허식없는 작품세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 문화라 하면 왠지 딱딱하고 지루하게만 느꼈었다. 항상 문화재 감상이라 하면 문화재의 사진과 함께 그 만의 예술성을 아낌없는 찬사로 써내려 간 작가의 문화재 예찬에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문화재를 올바로 보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하고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귀히 보존해서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알게 해야한다는 어떤 사명감마저 들게 되었다면 너무 거창할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문화재들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전과는 다른 아주 특별하게 보일 거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문화재에만 국한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우리 문화재와 우리 문화에 대한 연구 역시 끊이지 말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한국의 건축물, 자기, 회화그림들은 자연 속에 너그러우면서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도 이처럼 너그러움을 지니고 겉으로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한 멋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