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읽고나서 일반독후감 무진기행을읽고

무진기행을 읽고...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은 나에겐 참 익숙했다. 그것은 물론 제목으로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번 기회로써 이 책을 읽고, 정말 이 소설을 계속 지나쳐 버리기만 했더라면 그것은 정말 불행이었을 것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진에 간 희중의 심리처럼 나는 요즘 항상 나 자신의 불안한 자아를 가지고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빠져 있다기 보단 실생활이 되어 버린 나의 쓸쓸하고, 복잡한 심리상태에 맞게 이 ‘무진기행’속 김승옥의 정신세계는 나의 심리에 대한,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표상이라는 느낌까지도 받게 한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를 몽환적인 감수성으로 빠지게 만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줄거리의 시작은 이렇다.
주인공 윤희중. 무진이 고향인 희중은 현재 제약회사에 근무 중이며, 곧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돈 많고, 젊은 …(생략)

떠올리며 청승맞음과 이상한 연민을 느낀다. 노래가 끝남에 이어 바로 자리를 뜨는 ‘박’을 배웅하며 ‘박’이 인숙을 좋아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하인숙이 ‘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인숙과 함께 ‘조’의 집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 나누는 대화에서 인숙은 유행가를 불러 달라고 조르는 그들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까지 자신이 그들과 논 이유를 단지 심심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희중에게 자신을 서울로 데려달라고 까지 부탁한다. 무진이 싫다며 벗어나고 싶다고 애원하는 인숙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예전의 자신을 떠올린 듯한 희중은 약간의 혼란과 함께 내일을 기약하고 인숙과 헤어진다.
어머니의 산소를 갔다 오던 길, 우연히 자살한 술집여자의 시체를 목격하게 된 희중은 이상하게도 정욕을 느끼고, 예정된 약속대로 만나게 된 인숙과 희중은 바닷가를 거닐며 교감을 나누던 끝 결국 예전 폐병으로 요양을 하던 그 방에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다시 바닷가로 나와 인숙은 희중에게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어느 개인 날>을 불러준다. 희중은 그런 인숙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음 날, 늦은 아침 희중은 이모로부터 아내의 전보를 받는다. 급히 돌아오라는 전보를 읽고 한참 동안 갈등을 느끼지만 현실을 일깨우고 곧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애써 인숙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 내려가지만 바로 편지를 찢어 버리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무진을 떠난다. 무진을 떠나는 희중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라고 말하며 끝을 낸다.
몇 일간의 무진의 여행으로 만난 무진 속 사람들에게 희중은 자신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듯 하다. ‘박’과 ‘조’ 그리고 ‘인숙’에게 각각 순수한 자신의 모습, 속물이 된 현재의 자신, 과거의 자신을 느끼고, 심지어는 광녀와 술집여자의 시체에 마저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서울이라는 현실을 떠나온 무진 속 희중은 끝없이 내면적인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중 계속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숙의 모습에 불확실했던 자신의 과거의 모습과 가장 밀접함을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그녀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연민의 정으로써 주인공의 센티멘털리즘은 고조 되지만 아내의 전보 한통에 그는 바로 무거운 현실의 책임을 의식하게 된다. 자기가 추구하는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진을 떠나면서 그가 느낀 부끄러움은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이지만, 그는 무진의 체험으로 인해 새삼 현실의 만족을 느끼게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무진 속 기억들을 애써 부정하려 하기만 한다. 그것은 타인들은 모두 속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무진 속에 염증을 느끼며 살아가거나, 자살을 하는 무진 속 사람들 모두에게도 똑같다. 어떤 이유로 일상의 탈피를 원하고, 감수성에 젖은 현대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곧바로 ‘현실직시’라는 표현을 쓰며 좀 전의 내 모습을 허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끝내 반성으로 지우려 할 때가 많다. 왠지 찝찌르한 쓸쓸한 기억을 긍정으로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인가 모르겠다. 나 역시도 그 때의 부끄러움을 기억하는 그런 현대인 중 하나라고 말 할 수 있다. 안개로 상징되는 소설 속 ‘허무’가 우리들이 언제나 느끼는 그것이 아닐까. 허무 속에서 벗어나게 된 희중을 부정할 수도 긍정하기고 애매하다. 다만,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밖 에는...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나는 현실성보다는 감수성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또한 ‘무진기행’이라는 이 소설의 느낌은 익숙하고, 평범하면서도 상투적임을 거부한 새로운 눈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역시도 김승옥 작가만의 능력이자 독특한 매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른이 되어서도 끝없이 고민을 하는 나에게 자신의 내면을 직접 응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르쳐 주게 하는 듯 한 김승옥 작가의 이 ‘무진기행’을 나는 감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