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읽고서 무진기행

‘무진기행’을 읽고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도 같은 안개. 그것은 눈에 보이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손으로 휘휘 내젓는다 하더라도 헤쳐버릴 수 없는 기이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희뿌연 안개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온 것처럼 ‘무진기행’은 나에게 답답함과 허무감을 동시에 안겨준 책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희중은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개가 명물인 고향 무진으로 떠났지만 결국엔 부끄러움만 느끼며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 과정을 그린 작품이 바로 이 ‘무진기행’이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안개의 기운에 나는 ‘무진’이라는 소설의 배경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무진은 희중의 암울한 청년기가 담겨진 어두운 곳이었다. 그런 곳이 일상에서의 탈출을 꾀할만한 장소가 될 수 있을지 의아하기도 했다. 수구초심이라는 말도 있는데, 고향이 주는 알 수 없는 끌림 탓이었을까?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나는 결론을…(생략)

신과도 같아 얼굴이 붉어짐은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딱한 결심이 무진과 무진에서의 답답한 기억들을 모두 떨쳐버리려는 그 나름대로의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답답한 과거와 현실에서 벗어나 진실한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희중은 자신이 하인숙에게 보내려고 한, 사랑한다는 말을 쓴 편지를 찢어버리면서 무진에서의 희뿌연 추억들도 함께 날려버릴 수 있었을까? 상경을 재촉하는 전보처럼 진실한 나에게서 나 자신을 떼어놓는 현실의 제약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 것이다. 달랑 전보 한 장에 실려 날려온 현실의 제약에 찢겨진 그의 사랑은 과연 사랑이었을지, 과거의 나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었을지 입맛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나약한 마음이, 솔직하지 못한 현대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확실히 그의 무진기행은 허무하고 부끄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나의 무진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곳이 쓰라린 옛 기억이 있는 곳이라도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발길이 향해질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희중처럼 허망하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오고 싶진 않다. 결국 희중을 떠다민 것은 그의 속물근성과 나약함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나는 무엇보다도 강한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에, 안개를 헤치고 돌아오는 나의 옷자락에는 진실한 나의 모습만이 이슬처럼 맺혀져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