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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을 읽고나서..(이룸출판)
부엌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처럼 심오한 여성상을 담았거나 옛 여인들의 한을 내세운 책은 아니었다. 우선 그 점에서 마음에 끌렸던 소설이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참을수 없을정도의 궁금증! 그것이 부엌을 처음 접한 나의 마음이었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이것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궁금증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부엌’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담은 책이다.
지독한 더위의 나라 인도에서 한국인 유학생인 그녀(-소설 내용중에 그녀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는 외로운 이방인인 신세지만 그녀는 의외로 친구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2인분을 만들어 내야하는 부엌에 진절머리가나서 도망쳐온 곳이 인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채식주의자인 다모와 육식주의자인 무라뜨를 동시에 사귀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생략)
처받고 무라뜨 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였다. 상처를 주는자와 상처를 받는 자. 그녀는 이 두 가지이 역할을 동시에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 언젠가 보았던 끼르띠무카의 동상에 충격을 받고 거부감이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끼르띠무카는 한없이 굶주리는 형벌을 받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몸까지 전부 먹은 후 결국 머리만 남은 인도의 귀신 중 하나다. 그녀는 끼르띠무카의 동상을 보고 느낀 점을 무라뜨 에게 풀고있는 것 일 것이다. 여기서 끼르띠무카는 나에게도 큰 인상을 주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욕망을 가지고 살았기에 자신의 몸을 먹어버릴 정도의 배고픔을 느낀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끼르띠무카를 통해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어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했을 것이다.
사실 소설 속의 그녀는 지독한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생기를 잃어가던 그녀에게 무라뜨라는 인육은 부족했던 영양분을 채워줄 수 있는 대단한 영양제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게워내지 않고 포식을 했다. 달콤한 양과 맛을 느끼면서 말이다. 여기서 무라뜨가 소설 속의 ‘나’에게 잡아 먹혔느냐고 세세하게 물어본다면 그렇다 란 대답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부엌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그 냄새의 원인인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알맞게 조리된 무라뜨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지독한 위장병으로 인해 며칠째 먹지 못했던 터였고, 그래도 무라뜨를 더욱 맛있게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천천히 먹으면서 무라뜨의 육질을 평가하면서 까지 말이다.
사실 무라뜨는 그녀에게 먹힌 것 이 아니라 그녀에게 먹혀준 것이 아니였을까. 끼르띠무카의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한다. 이렇게 본다면 무라뜨는 그녀에게 먹혀지면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말그대로 먹힌 것이 아니라 먹힌 것 처럼 말이다.
책을 읽다가 끈임없이 반복되는 부엌이란 소재에 대해 궁금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부엌이라는 소재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람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부엌은 그 곳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처럼 하나의 창조행위, 또 요리사에게 있어서는 예술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정확히 따지고 들면 즉, 부엌의 원초적 기능을 생각하여 본다면, 그 곳은 하나의 생명유지의 공간일 뿐이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먹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녀, 그런 자신이 먼저 떠나온 부엌. 그러나 인도에서까지도 귀찮게 그녀를 따라다니던 그녀의 부엌에 대한 집착은 결국 살고싶어 하는 하나의 욕망이 아니었을까(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을 정하는데 있어서 방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부엌이 마음에 드는 곳을 정했다)
다시 말해 무라뜨는 먹지 못해-즉,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 점점 야위어 가는 그녀를 보며 하나의 공생적 관계 틀 속에서 자신이 인육이 되는 것을 무방비 하게 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생명유지의 공간이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이루는 곳이 아닌 사회를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는 선후배, 친구사이를 막론하고 서로 먹고 먹히는 쇠사슬 관계에 놓여져 있다. 이처럼 무라뜨는 맹목적인 희생으로 자신이 그녀에게 먹혀주면서 그녀의 욕망을 충실히 채워주는 밑바탕이 됬을 것이다.
부엌, 책 속의 그녀가 떠나왔지만 또, 언제까지나 그녀를 따라다닌 곳. 책 속의 그녀가 부엌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부엌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부엌이란 곳에서 아름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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