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짓는 늙은이

독 짓는 늙은이
저자 : 황순원
출판사 : 삼중당
이 책은 평소 작가 황순원 님에게 관심이 있던 터라 심심할 때 틈틈이 읽어 두었던 책이다.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생을 독 짓기에 여념이 없는 송 영감을 버리고 젊은 아내가 그의 조수를 따라 도망을 가버리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러한 아내의 배신은 송 영감에게 일생 동안 열정을 바쳐 온 자신의 삶에 대한 충격으로, 아니 절망으로 다가온다. 아내의 배신은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까지 자신이 소중하게 일구어 왔던 삶을 거부하는 현실에 대한 충격이었고 그러한 삶의 결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게 된 경제적인 무능함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지금까지 믿어 왔던 삶의 의미까지 현실 속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송 영감은 독을 짓다 쓰러지는 도수가 많아졌다.
송 영감이…(생략)

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송영감은 절로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저것 보라고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고 하고는, 애의 손을 끌고 그 곳을 나왔다.
그냥 감은 송 영감의 눈에서 다시 썩은 물 같은, 그러나 뜨거운 새 눈물 줄기가 흘러내렸다.
온몸이 오므라들고 차옴을 송 영감은 느꼈다.
그러는 송 영감의 눈앞에 독 가마가 떠올랐다. 우선 몸이 녹는 듯해 좋았다. 그러나 송영감은 다시 일어나 가마 안쪽으로 기기 시작했다. 곧 예삿 사람으로는 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데까지 이르렀다.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이 발산하는 듯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찾던 것이 예 있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에는 터져 나간 송영감의 독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송 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아주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 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리도 하려는 것처럼....
급속하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자신이 지켜왔던 삶을, 경건하게 죽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자신들에 대한 엄격함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엄격함은 곧 장인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의 삶은 오늘날 자신의 삶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한다.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삶에서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말해주는 듯 하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는 지금 내가 또 얼마나 시간만 버려버렸는지 후회가 된다.
그저 묵묵하게 내 일만이라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대단한 일인 듯 싶다.
오늘 또 송 영감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