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인생

레디메이드 인생
저자 : 채만식
출판사 : 하서
틈틈이 독서량을 늘리고 있던 중에 여러 개의 단편이 실린 책을 읽기로 하고 일단 흥미가 가는 제목부터 읽어보기로 했었다. 그 사이 여러 단편을 읽었지만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제목은 그다지 내 눈에 띄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국어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해서 책을 고르던 중 레디메이드 인생을 택하게 되었다. 일단 나는 책을 읽어보기 전 채만식이란 작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작가의 인생, 그리고 가치관등은 작가의 작품 하나 하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단 작가를 알면 작품이 쉽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채만식은 소설가이며 레디메이드인생 이외에 탁류 태평 천하 등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초기에는 사회주의 단체에 동조하는 사회 비판적인 소설을 써서 동반자작가의 작품 경향을 보…(생략)

로 누구보다도 그 시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시대의 음울했던 모습을 정확히 풍자하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지식인 실업자의 생태와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경제 공황기 이며 일제치하의 서울이 배경이 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 상황에 실직중인 주인공 p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러 저리 찾아 다니지만 번번이 거절 당할 뿐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는 어려서 결혼하여 이미 처자식을 둔바 있지만 지금은 부인과 이혼하고 자식을 형의 집에 맡긴 채 홀로 서울에 와서 일자리를 찾아 다니고 있다.
그는 고등 교육을 받은 신지식 인으로써 왠지 모르게 자신이 습득한 지식들에 대해 상당한 권위의식과 자존심 등을 가지고 있다. 부인과의 이혼도 그 지식인 의 면모가 들어 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그가 모 신문사의 k사장에게 찾아가서 일자리를 부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그 곳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k사장으로부터 농촌계몽운동에 힘 쓰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는 애써 태연한척하며 지금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그걸 한다면 먹고 사는 것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k사장은 덤덤히 쓴 침만 삼키고 만다.
이렇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허탈하게 돌아다니던 그는 지나가던 여자를 보며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하며 담배 가게 주인과 실갱이를 벌여서 괜한 자존심으로 결국 방세를 내고자 했던 돈을 써버리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형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해 있었고, 내용은 p의 자식인 창선이를 보낼 테니 거기서 키우라는 것이었다. 여기 있으면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어 보기가 너무 안쓰러우니 제발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p의 형은 매우 가난한사람으로 동생의 아들인 창선이를 맡아 키우면서 보통학교에 입학도 시켜주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형편 때문에 중도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편지를 받고 속상해 하던 중 같이 자취를 하던 m과h와 함께 P와 M은 H를 졸라 그의 법률 책을 잡혀 돈 육원을 만들어 가지고 나섰다. 그렇게 흥청망청 술집을 전전하며 돈을 썼고 남은 돈은 2원......
그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일제히 동관으로 향했다. 거기서 정조를 팔 테니 제발 2전만이라도 달라는 매춘부들의 말을 듣고 왠지 모를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머니의 돈을 모두 꺼내 던져버리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정조를 빼앗기면 죽겠다는 여자와 정조를 줄 테니 제발 2전만 달라는 여자를 비교하며 현 사회의 모순과 K사장의 화려한 생활과 위선적인 행동에 분개한다. 그렇게 돈을 던지고 나온 그는 일주일 동안 돈이 생긴 데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구걸하거나 빌리는 등의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작가는 그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정오에 전보를 받은 그는 15원을 변통하여 살림살이를 장만한다. 아들 창선이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는 모 인쇄소의 문선과장 a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이를 취직 시켜 줄 것을 약속 받는다. a는 왜 교육을 시키지 않고 인쇄소에 취직을 시키려고 하냐고 묻는다. p는 학교에 보낼 처지가 못되고 또 보낸 댔자 사람 구실도 못할 테니까 인쇄소에 취직 시킨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a는 창선이의 나이와 교육을 다 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애처로워 하지만 p의 성화에 못 이겨 허락한다.
그렇게 p는 창선이를 맞을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이틀 날 새벽에 일어난 P는 서투른 솜씨로 화롯밥을 지어 놓고 정거장으로 나간다. 어디서 생겼는지 새까만 양복을 입고 이화표 붙은 학생 모자를 쓰고 거기다가 보따리를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는 창선이를 보고 P는 어쩐지 한편 속으로 가엾기도 하였다. 창선이를 데려온 s는 창선이의 외할머니, 즉 p의 옛 장모가 s에게 전해달라고 했다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객지에서 혼자 있는데 데리고 있기 정 불편하거든 당신께로 도루 보내게 하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는 그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을 듣자 옛날의 반감이 솟아오른다. 허나 옛 장모 측에서 보면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아 야할 사위가 평소 지식인이니 뭐니 해서 편안한 일자리만 찾는 것을 보고 못마땅했음이 틀림없다. p는 별걱정을 다한다면서 그 집에서 내 자식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보내라는 것 이냐며 화를 낸다. 그는 홧김에 창선이가 입고 있던 양복을 벗겨 보내려고 했지만 화를 참는다. 주인공 p가 자식을 키우기 힘든 생활인데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리며 창선이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는 데서 그가 그의 남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날 저녁 p는 창선이가 잠든 모습을 보고 예전에는 없었던 애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창선이를 데리고 모 인쇄소에 가서 A에게 창선이를 맡기고 안 내키는 발길을 돌이켜 나오면서 p는 중얼거린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라고.....
이로써 p가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고 공장에 보낸 이유가 정확히 밝혀진다. 그는 자신의 자식마저 헛된 지식으로 취직하기 힘든 이 시대의 인텔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무능한 자기 풍자에 그치지 않고 당대 현실까지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사회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비감 어린 풍자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이 그래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 아들을 인쇄소에 무료 견습공으로 맡겨 버리는 행위는 레디메이드 인생, 실속 없는 인텔리의 슬픈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아들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리고 P는 자신과 아들 모두가 팔려 가기를 기다리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p는 무직 인텔리로써 쓸데없는 지식으로 직업에 대한 눈이 높은 인물이다. 만약 그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자부심 등은 없었을 것이고 그는 농민이 되거나 공사판에 뛰어들어가서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은 그가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직장을 잡을 수 있길 바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함으로써 물밀 듯이 밀려온 무조건적인 서구 문명과 교육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주요 갈등은 지식과 지금 인텔리가 처해있는 현실 상황에 있다.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대한 풍자와 실직 지식인의 궁핍하고 절망적인 삶,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겪어야 하는 고민과 방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주인공 p는 결국 아들을 인쇄소에 보내면서 일제 식민지의 지식인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별 흥미가 가지 않는 책이었지만 읽어보니 나름대로 깊은 뜻을 가지고있는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현재의 상황도 소설 속 주인공 p가 살고있는 상황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도 신 지식인들은 수요는 일정한데 물량이 무작정 공급되는 것과 같이 쏟아져 나오지만 취업이 힘든 상태이다. 아마 그 당시에 생겨난 사회 풍토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 p처럼 어리석은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잡 지식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그 분야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레디메이드란 작품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