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을 읽고나서 사 하 촌

“사 하 촌”을 읽고...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가을을 배경으로 했지만 풍성한 가을과는 상반되는 소설... 그게 바로 내가 읽은 사하촌 이다.
사하촌이라는 농촌마을...그곳에는 누구보다도 중이 잘 사는 마을이었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절에 자신의 땅을 받치며 소원이 이루어지길 갈망하곤 했다. 이 마을에 가뭄이 닥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그 어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늘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문시간에 배웠던 `계란유골"이라는 한자성어가 생각났다. 그 얘기는 황희 정승에 관련된 얘긴데 뜻을 풀이하면 재수가 없는 사람은 끝까지 재수가 없다는 것을 총칭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시대적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 시절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생략)

교에 보내려고 해도 가기 싫어하는 우리들... 우리는 가끔씩 이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에게서 "우린 배우고 싶어도 못했는데 너희는 배우라고 해도 할 생각을 안 하니..."하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나도 이런 소리를 그저 `잔소리`라고 여기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내가 믿지 않았던 사실의 심각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느긋하게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을 쓰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소설 속에서도 옛날사람들의 인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웃사람이 강도에게 당하기 직전의 비명소리를 48명이나 들어놓고도 전혀 무관심한 태도의 현대사람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논에서 품앗이를 하며 이웃이 봉변을 당했을 때에는 자신의 일처럼 신경을 써 줬던 그 시대 사람들... 하지만 이런 사람들간에도 약간의 이기심을 엿볼 수는 있었다. 가뭄이라서 물 한 방울 없는 마을에 저수지의 물을 개방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만약, 저수지에서 멀리 있는 논부터 차례대로 물을 받았다면 이웃 간의 싸울 일 도 그리고 물을 채우지 못해 곡식이 바싹 말라버릴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곳사람들은 아전 인수격으로 서로 먼저 물을 대려고 혹은 더 많은 물을 자기 논으로 흘려 보내려고 욕심을 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이런 이기심을 심어 준 것 도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잘 살고 오히려 피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이 못 사는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사람을 공평하게 한다고 해 놓고선...`하는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그러나 실상 이런 불평을 늘어놓아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사하촌의 농민들이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한 것도 일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자신의 노력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 그런 그들이 부처님에게 자신의 땅을 바친들 피땀의 결정체인 돈을 가져다 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시대의 부처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밖에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노력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지만 실상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노력하는데 가뭄이 들고 노력하는데 돈이 없어 세금을 내지 못하고 또 노력하는데도 사람들은 그걸 알아주지 못한다. 세상엔 노력이라는 것말고도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어떤 사오항이 닥치면 그 상황을 바르게 대처할 지혜가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실천할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노력과 지혜를 갖춘다면 더 이상의 것도 바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소설 속의 사하촌 사람들은 노력만으로 뭔가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믿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들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불행 끝의 낙을 그들에게 선물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가을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단 비를 내려 곡식들의 목을 축이게 하고 어느 해 보다도 풍성한 가을을 그들에게 맛보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