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삼국유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보면 각 지방을 필자가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유래나 그곳에 얽힌 이야기 등을 많이 알려준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이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삼국유사를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정사인 삼국사기에 싣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연 스님이 모아서 엮은 야사이다. 글자 그대로 내버려진 이야기들을 모은 유사여서 오늘의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책이다. 바로 이 버려졌던 이야기들 속에 삼국사기의 뒷모습이 숨겨져 있고, 이 땅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빠진 옛날 기록들을 모두 모아 놓아 신라의 기록뿐만이 아니라 망한 나라인 고구려나 백제의 관련 자료들도 많이 알려주고 있다.
일연 스님은 문헌자료만 가지고 이 책을 지은 것이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보고들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이 책을 지었다. 스님의 공로…(생략)

부인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삼천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했으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왕이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두루 맡아 다스리며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면서 항상 신인 환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변화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신인이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너희들의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먹으면서 삼칠일을 참은 끝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범은 참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곰네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늘 신단수 밑에서 잉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사람으로 변해 혼인하고, 아들을 잉태해 낳으니 이가 바로 단군 왕검이다. 단군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던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했으며, 또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린 것은 1500년 간이었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던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 나이는 1908세였다. 난 이 이야기를 단순한 하나의 신화로만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냥 전해 내려오는 신화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처음을 말해 주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것은 백성들을 단결시키고 나라의 제도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넣은 이야기일 것이다. 비록 신화 즉,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 민족은 조금이나마 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단군 신화`는 고조선의 역사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사기에서는 고조선의 역사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단고기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여기 나온 단군의 시대부터가 아닌 더 옛날부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이 단군 신화는 한민족 최초의 건국 신화가 아닌 그냥 한 나라의 건국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 삼국유사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 단군 신화가 가장 처음이다.
삼국유사엔 스님이 쓴 책인 만큼 불교에 관한 내용이 매우 많다.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야기부터 여러 절, 탑, 스님의 이야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조신의 꿈` 이라는 이야기는 정토사가 세워진 이유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광수의 `꿈`이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조신이라는 사람이 세규사의 장원에 와서 태수의 딸을 좋아해 깊이 빠졌다. 여러 번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그 여인의 사랑을 얻게 해달라고 남몰래 빌었지만, 몇 년 사이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면서 해가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미음이 지쳐서 깜빡 잠이 들고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태수의 딸이 자신에게 와서 같이 살림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으나 너무 궁핍하여 나물 죽마저 제대로 잇지 못하고 돌아다니면서 겨우 연명하다가 큰아이가 굶어 죽었다. 길가에 묻어 두고 계속 옮겨다니다가 나중엔 두 사람이 서로 헤어지기로 하고 만다. 헤어지는 그 순간, 조신은 꿈에서 깬다. 그 때, 조신은 세속에 물든 탐심이 사라졌고, 관음보살의 모습을 대하기가 부끄러워, 지난날의 잘못을 모두 뉘우쳤다. 꿈속에 묻었던 아이를 파보니, 그것은 돌미륵이었다. 깨끗이 씻어서 가까운 절에 모시고, 나중에 자신의 재산을 기울여 정토사를 창건했다. 그 후로는 부지런히 선행을 쌓았다 한다. 정토사라는 한 절이 생긴 설화를 알려 줌과 동시에 인간 세상의 즐거움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일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또, 삼국사기와는 다르게 선덕여왕을 좋은 쪽으로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말은 당시의 남존여비 사상에 입각해 여자가 왕이 된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고 무조건 비방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선덕여왕 때 문화가 발달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에 비해 삼국유사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있는 것을 그대로 선덕 여왕이 3가지의 일을 미리 알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당나라 태종이 보낸 꽃 그림을 보고 같이 보내 온 씨가 자라 핀 꽃이 향기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고, 한겨울에 백제군이 부산 부근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았고, 자기가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자신이 묻힐 곳까지 미리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임금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말도 덧붙여 천문 관측이 활발했고 천문학이 발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일연 스님이 그 때의 사상에 연연하지 않고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다고 기록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으며 역사가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다. 경문왕이 즉위하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몰랐지만 복두장 한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죽을 무렵에야 도림사 대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들을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알던 이야기이다. 내가 알고 있던 그냥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런 역사책에 실려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그 외, 동화처럼 들려 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이 책을 읽다 보니 만날 수 있었다.
난 이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사에 있는 딱딱한 정치 이야기가 아닌 받아들이기 편하고 부담 없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과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내가 잘 모르고 있던 여러 가지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읽을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절이 세워진 이야기, 탑이 세워진 이야기 등의 이야기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불교를 접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처럼 정치적인 목적도 없고, 중국을 높게 여기는 사대주의로부터도 벗어난 역사책이며 그 시대의 향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을 너무 늦게 읽게 되어 참 아쉬웠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졌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웠다. 사대주의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 서민들도 역사의 주인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 남존여비 사상에 치우쳐 한 인물을 여자라는 이유로 비하시켜서도 안 된다는 것 등 참 많다. 또, 이 책은 나에게 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으며 이제 역사책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이 책은 나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임을 알게 해주었다. 이러한 소중한 역사적 자료를 남겨 고대 우리나라 역사와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엿보게 해 주신 일연 스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