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를 읽고 삼대

삼대를 읽고
처음에 `삼대`라는 소설을 읽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을 때, 어느 정도는 각오(?)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께도 만만치 않았고 들은 바로는 그다지 재미있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은 모양이니,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밤에만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읽는게 굉장히 힘들었던게 사실이다. 매우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집안의 삼대의 모습을 여러 가지 사건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그 당시의 조선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조씨 가문의 가장 높은 어른이자 삼대(3대)중 1대인 조의관, 그리고 그 밑에 2대의 조상훈, 그리고 3대의 조덕기를 중심으로 그 삼대의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펼쳐지는 삼대의 이야기는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조선시대를 좀 더 가깝고 리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생략)

것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도상의 변화였지, 사람들이 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어서 양반을 돈으로 사고 판다든지, 돈 많은 집에는 몸종이 있다든지 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삼대에서 조의관이 양반을 산 것이라든지, 원삼내외등의 사람들이 조가네 집에서 몸종을 지내며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등은 이런 그 당시의 사회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예이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첩을 둔다는 것이 그다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나 보다. 삼대 중 2대까지는 이미 첩이 있고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있다. (경애의 경우에는 첩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조덕기도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보며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경계를 했지만 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덕기도 필순이를 첩으로 맞아들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양의 문화와 가치관이 급속도로 사회에 유입되었지만 첩을 둔다든지 하는 예전 관습의 잔재는 아직도 남아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것들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일부다처제와 같은 것은 한 사회의 관습이기 때문에 이것을 절대적인 평가로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긴 힘들지만, 근대적인 문명이 들어온 시점에서 예전의 인습들을 떨치지 못하고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조선 말기라는 배경이 여러 가지 면에서 과도기적인 시대였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들은 불가피하게 여겨지지만 그래도 옳지 않은 면은 분명히 있었다.
기독교의 유입에 따른 유교와의 갈등은 많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건 요즘도 어느 집안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대`에서 조의관과 조상훈은 그런 정교적인 대립으로 가장 큰 갈등을 빚는다. 조의관은 뼛속까지 유교적인 사람이었고 조상훈은 교회의 장로였다. 이렇게 종교적인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사사건건 맞부딪히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역시 제사때 가장 크게 표면으로 드러났다. 조의관은 제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도 죽어서 후손들이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줄 것으로 믿고 있는 데 이 아들이란 녀석은 제사하는 것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나서니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수년간의 갈등과 대립이 쌓이고 쌓여 조의관은 아들 조상훈보다 장손인 조덕기를 더욱더 아끼게 되고 자신이 죽었을 때의 재산도 조덕기에게 대부분 물려주게 된다. 우리 집안에서도 종교적인 대립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의 유교적인 관습-대표적으로 제사-을 계속 이어내려 가려고 하는 할아버지 세대와 그것이 주는 심적, 육체적 부담감 때문에 최대한 간소화하거나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것은 분명 우리 집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조선 말기에 볼 수 있었던 이런 갈등이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조상대대로 내려져 오는 관습을 지키려고 하는 할아버지세대를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마저도 받고 있는 아버지 세대를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끝없이 갈등을 거듭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는 최대한 서로의 입장을 조절하면서 어느 정도는 서로에게 양보할 필요가 있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고 후손들이 조상의 가호를 받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 제사는 인습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다만 그 형식이나 방식이 시대상황과 어긋나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 많아, 그것을 최대한 타협한다면 어느 정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무너진 소련이 주도한 공산주의 사상의 혁명은 이 시절에도 사회 깊숙이 침투해서 마르크스 사상의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덕기의 친구 병화는 그런 사회의 움직임을 핵심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말로와 그 후손들의 삶은 실제로 지금까지 지어지고 있다. 애국지사였던 필순의 아버지는 늘그막에 가난하게 살다가 결국 젊은이들에게 맞아 죽고, 그의 딸인 필순이도 공장일을 전전하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산다. 지금도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대접을 못 받고 살고 있는 반면, 친일파의 자식들은 오히려 더 잘 살고 있다. 조가네 집안에서의 재산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음모와 신경전은 당시의 암울하고 불안정한 시대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당시 조선 사회의 불안정한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지만, 삼대의 배경으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는 삼대가 안고있는 사회문제와 모순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아직 그만큼 성숙해지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삼대는 단순히 한 집안의 재산다툼이나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 아니다. 삼대는 한 집안에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한 집안에 모아놓음으로써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결코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 삼대에서의 조선사회의 여러 모습 중,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삼대는 그 당시의 조선 사회의 모습을 조명하는 동시에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우리는 삼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좀 더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