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가는 길

삼포가는 길
TV에서 우연히 TV문학관을 보게 되었다. 배우들의 말씨와 옷차림으로 꽤 오래전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제목이 삼포가는 길인만큼 마지막에 주인공이 삼포로 갔을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도 이제 그 곳에 갈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 슬펐다. 그곳이나 삼포나 독자와 주인공에게는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니까.... 우선 주인공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겨울이 되자 일자리가 없어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면서 다니는 영달이와 출감하고 고향(그가 말하는 고향은 남쪽 끝 삼포)을 찾아가겠다는 정씨, 어린나이에 가출하여 작부노릇을 하면서 살아온 백화가 목적지는 다르지만 가는곳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자고하여 서로 동행을 한다. 고향이 남쪽끝이라고하는 것 또 삼포는 비옥한 땅이 남아돈다는 것에서 극의 배경이 찬바람 쌩쌩부는 추위와 일자리가 없는 공사판과 대비되어 현실이 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더욱…(생략)

사람들은 이곳을 용운동 골짜기라고 부른다. 늦겨울에서 봄까지 그러니까 딱 지금쯤에 나물을 뜯어오면 저녁 한 상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게 온갖 나물이 많았던 곳이다.. 동네사람들이 단체로 가서 쑥을 뜯어와서 쑥떡을 해먹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어제 갔던 그곳은 황량하기 짝이없었다. 주인공의 고향 삼포와 같이 개발에 들어갔다. 그 주위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이사를 갔고 살림살이 없이 남은 집은 다 헐리고 최근에도 사람이 살았었다고 남긴 흔적인 냄비 몇 개가 남아있었다. 밭에 꽂혀있는 붉은 깃발은 여기까지 공사를 하겠다는 건지 여러군데 꽂혀있었다. 벌써 모래를 갖다놓고 건축자재들도 곳곳에 쌓아두었다. 예전부터 공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일찍일줄이야...... 그 좋던 곳도 이번이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렸을적부터 다녔던 곳이니까 나도 이제 길정도는 아는데. 엄마가 말해준 미나리밭이 어딘지도 안다. 일년에 몇 번 가본이곳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나의 작은 고향으로 느껴지는데 주인공 정씨에게 삼포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향을 떠나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찾아가려하니 이제는 동네조차 남아있지 않을거라는 노인의 말.. 삼포 역시 섬이었던 곳이 바다 위에 길이 놓여 육지가 되고 관광지로 개발된다는 것.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나 역시 더 이상 어렸을적의 추억이 말 그대로 추억속으로 묻혀져버린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내 아이들과 나물을 캐는 놀이를 해볼수 있을까? 소설의 결말부분은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으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기차가 달려가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은 삼포일 그 자체일수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기차에 몸을 싣었지만 마음한켠에 옛고향의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을 수도 있고, 다시 어두운 들판이라는 곳은 정처없이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해석되 주인공이 유랑생활을 할 것은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디에도 주인공이 갈 곳은 없을것이라는 것....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어디에 두어야할지 혼란에 빠져있다. 자아 정체성의 위기라는 것은 도덕책에 질리다 할 정도로 보았고 해결책 또한 너무 상투적이지 않으면 이상적이다. 사람들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찾으려한다. 자신의 마음의 안식처. 안주할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정신적지주가 될 만한 무언가를 말이다. 그런 것은 책에서 찾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들, 아니면 상담사에게 하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은 안식처 고향이 아닐까. 못살았지만 그래도 어릴적의 향수 고향. 가끔 옛날 이야기는 하는 아빠의 마음도 이와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 역시 나의 안식처의 이곳이 사라져가는 마당에 나 자신이 정씨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난 그곳에 건물이 들어서면 우와 멋있다 하고 감탄을 할 사람이니까. 또 우리가 삼포는 이미 개발공사중이라는 말을 듣고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일자리가 있다고 좋아하는 영달이를 비판할 수도 없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영달이와 같기 때문이다. 집 주위에 그린벨트가 형성되어있어 개발도 안되고 땅값이 떨어져 해체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욕 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살고있는 이곳에 아파트나 큰 건물이 세워져서 땅값이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지역에 묶여있어 새로 교사를 지을 수 없었던 우리학교가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데 나 역시 언제 새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하는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그렇다면 주인공과 같이 고향잃은 사람도 없을것이고 상막해져가는 사회가 다시 정이 물씬 나는 우리의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