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를 읽고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마 작년 초여름쯤이었을 것이다. 참고서를 고르려고 서점에 갔다가 뭔가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책이 없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골라준 책이 바로 이 책. ??상실의 시대??이다. 작가를 꿈꾸는 친구이니 만큼 책에 대한 그의 안목을 신뢰할 수 있었고 세계적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기에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계산대에 설 수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페이지를 넘기니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생각도 나고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분명하게 기억되어 지루하기는커녕 처음 읽었을 때보다도 더 재미가 있었다.
상징적인 표현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도 잘 어울리지만 한국판에서 붙인 ??상실의 시대??역시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추측해 볼 수 있듯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은 ??상실??에 대한 아픔이며 고독이다…(생략)

한다. 하지만 상태가 악화되는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서 오는 편지에 제대로 답장조차 하기 힘든 처지여서 와타나베를 힘들게 한다.
그러는 와중에 와타나베는 나오코와는 달리 같은 대학의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에게도 깊은 호감을 느낀다. 나오코의 존재 때문에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는 와타나베이지만 그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그가 지내는 기숙사의 선배인 나가사와와 함께 종종 지치고 외로운 몸을 달래기 위해서 다른 여자들과 함께 관계를 가지는 와타나베의 태도는 좀 너무한다 싶었다. 이 당시(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일본사회의 통념이 이런 방면에 관대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하지 못한 와타나베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태가 호전된다고 생각했던 나오코는 마지막에 모든 걸 정리하고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나오코의 죽음으로 와타나베는 괴로워 하면서 여행을 다니다가 요양원에서 나오코의 룸메이트인 레이코씨-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던-와 둘만의 나오코를 위한 장례식을 치러준다. 레이코씨의 멋진 기타연주로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두 사람은 관계를 맺고-일종의 새 출발의 의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꼭 이런 방식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레이코씨는 오랜만에 외출하는 바깥 사회에 대한 적응을 위해 떠나고 와타나베 또한 미도리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의 행복을 예고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타나베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다시금 고독에 관해서 느끼게 되고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의미를 그려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와 맞서는 것이며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그리고 누구나 이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서로 격렬하게 사랑했고 그 사랑이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자살-로 이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겪은 가엾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실의 고통 속에서 자살을 택한 사람-기즈키, 하쓰미, 나오코-도 있고, 힘차게 앞으로 내딛으려는 사람-와타나베, 미도리-들 또한 있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나는 아직 정확히 실감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이들의 기분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는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되고, 고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느 누가 이런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의 지나친 염세적인 태도나 노골적인 성적 묘사에 관한 부분은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낯을 뜨겁게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건 작가 하루키의 문체적인 특성이며 이런 부분이 오히려 하루키의 매력이다라는 의견도 많다. 그리고 아직은 내가 이 글을 완전히 받아들일 만큼의 나이가 되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좀더 자라서 사랑을 알고, 상실의 아픔을 알고, 고독을 알게 될 때 즈음에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때 이 책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확실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상당부분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작년에 내가 느꼈던 것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것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차이를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앞으로도 여러번 이 책을 읽어보겠지만 스무 살이 되는 해에 할 수 있다면 원서로 꼭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와타나베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한 그 스무 살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