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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페르소나 속에서 (새의 선물을 읽고)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
난 이 책을 이 하나의 문장 때문에, 사게 되었다. 단 하나의 문장 속에 내포된 엄청난 뜻. 처음에 접했을 때는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아주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진희라는 이름의 12살짝리 여자애의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보통 여자애는 아니었다. 세상에 대해서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고 해야할까? 12살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숙했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을 빼고나면 나머지 내용은 다 진희의 12살 때 이야기이다. 한 동네에서 진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재미있고도, 그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날카롭게 밝히고 있었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그 이면에는 분명 또다른 것들이 존재하…(생략)
.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페르소나`라는 말이 떠올랐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이 페르소나가 존재한다고 한다. 나로 치면 딸로서, 언니로서, 학생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거기에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뒤집어 쓰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페르소나는 사회가 원하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준비되어 있는 수많은 무대들과 장치들, 주위에 널려있는 배우들 속에서 우리는 그 무대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멋지게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공간에 오게 되면 그 페르소나를 벗고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진희라는 인물이 전혀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진희가 바로 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친구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 모든 사람일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약간은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린아이다움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때문이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어머니는 우울증 때문에 목을 매어서 자살을 하고, 아버지는 살아계시나 어디 계신지도 몰라서는 할머니 손에서 이모와 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런 상황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타고 난 것인데, 자기 잘못은 없는데라고는 하지만 그 상황 속에 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약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자신 때문에 생긴 상황이 아니지만, 자신의 행동은 그 상황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진희는 그것이 자신의 약점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어째서, 어째서 자신을 숨겼을까? 겉으로 아주 착하고, 예쁘게 행동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할머니에게도 이모에게도 삼촌에게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미운 짓을해서, 그래, 편하게 조르기도 하고, 장난도 치다가 미움이라도 받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진희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느끼는 정은 고운정이라고 했고, 이모에게 느끼는 정은 미운정이라고 했다. 고운정은 아주 일시적이고, 쉽게 끊어지는 것이지만 미운정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할머니가 아주 극단적인 진희와 이모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분명 이모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미운정이라는 것은 고운정은 아주 끈끈하게 이어서는 다시는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미운정이라는 것은 세월 속에서 묻어나와서는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희 자신은 할머니에게서 미운정을 이끌어 낼 수가 없었다. 두려웠겠지. 약점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아마 속으로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미운 짓 다음에 나타날 할머니의 행동이 아마도 두려웠을 것이다. 진희가 아무리 강한 척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도 그런 진희의 행동들이 나에게는 측은하게 다가왔다. 수많은 `나`가 있다고 해도 그것들 모두 다 나였고, 나일 것이다. 그런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남을 너무 의식하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좁고도 넓은 세상 속에서 삶은 엮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우연과 인연들이 교차하면서 여러 상황이 얽히고 섥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찮게 발생한 상황들에 대해 자신이 참아왔던 감정들을 한 순간에 토로하기도 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쳐서 벗어나서는 다시 제 발로 돌아오기도 하고, 겉으로는 냉랭한 척 해도 뒤돌아서는 끌리는 마음 진정시키지 못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고,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희비가 엇갈리고, 주저앉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켜가면서, 가꾸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이 책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장군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간 것이 아니라 부하들에게 문책을 하다 난 상처에 파상풍이 나서 죽은 남편에 대해서 멋진 장군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며, 자기 아들에게 장군이라고 이름대신 부르는 장군이 엄마. 당당해 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내새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초라해 지기 싫어서, 일부러 크게 포장하는 것일까? 분명, 사람은 자신의 좋은 점을 남이 못하는 자신만의 것의 내새우고 싶어한다. 아무리 그것이 작은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 조금은 허풍도 삶에서는 양념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광진테라 아줌마. 이 아줌마를 보면 얽매어 있다는 것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매번 속으로는 같은 일상 지겨운 일상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결국에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버스가 오면 막상 타지 못하고 버스를 보내고 마는 아줌마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팠다. 가끔은 때로는 반복되는 인상이 싫을 때도 있다. 힘겹고 지겹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다고 해서 쉽사리 뛰쳐나올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허황된 바램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꿈들은 지녀봤기에 조금은 다를지라도 광진테라 아줌마의 바램에 동질감을 느꼈다. 진희 이모. 철 없다고 생각이 될만큼 어린아이 같았다. 순수하기도 했지만 푼수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연을 겪고 나면서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볼 때 성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미 자랄만큼 몸은 다 자랐지만 마음이 자라지 않았다면 진정한 성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장이란 것은 아니, 구체적으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진정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신이 성숙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더 이상 투정부리지도, 어리광부리지도 않아야 하며 책임을 져야하고 당당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생일 케잌에 초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어깨에는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들이 하나 둘 얹혀진다. 다만 철부지 어린애처럼 행동을 해서 그것들은 내것이 아닌양 대할지는 모를지라도 말이다. 그래,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광진테라 아저씨. 한 마디로 말해서 참 얄미운 사람이다. 그러나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괜히 자신을 내세우다가도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갑자기 설설기는 사람, 이래 저래 왕년에는 어떠했다고 하면서도 아무도 믿지않는 허풍만 떠는 사람, 마누라 귀한 줄 모르고 무조건 구박만 하는 사람, 그러다가 집 나가면 그제서야 찾으러 가는 사람, 그리고 찾아오면 또다시 뭐라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광진테라 아저씨였다. 언제나 신세 한탄만 하고 자신의 잘났는데 사회가 이래서 그랬다는 둥 결국 모든 것 탓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아저씨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속으로는 조금씩 왕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신세 한탄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 책 속에서 수많은 나를 보았고 나 아닌 수많은 다른 사람을 보았다. 모두들 자기 나름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고 세상 속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때론 자신을 자책하고 주저앉고 싶지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 언제 그랬다는 듯이 살아간다. 가슴 속에는 상처가 있더라고 말이다. 자신을 속이고 살아도 말이다. 그래, 아마도 나도 지금까지보다는 더 많은 날들을 지나가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난 내 삶을 끌어안고 싶다. 69년에 살아도 70년 대에 살아도 80년대, 90년대, 새천년을 맞이해도 여기 있는 것은 나고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도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고 싶다. 나를 위해 준비된 커다란 연극 무대에서 마음껏 연기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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