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없다 서부전선이상없다

서부전선이상없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세계 2차 대전도, 냉전도, 또 지금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1차 대전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사상자가 제일 많은 전쟁이었으며, 독일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지워 2차대전과 히틀러를 낳게 한 전쟁이었으며, 또 미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끼어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레마르크가 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일개 병사 폴 보이머의 눈을 통해 그가 바라본 전쟁의 현실은 냉혹하고 비참한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병사들 사이의 우정, 그리고 기상천외한 해프닝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하지만 무력한 개인이, 영웅심과 사상, 국가의 유혹과 젊은이로서의 의무감 등으로 자신의 인생을 박탈당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결국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상…(생략)

가 죽는 장면에서는 치를 떨게 한다. 카친스키는 작품 내내 침착성과 여유만만함, 그리고 전쟁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잡초같은 생명력과 날카로운 직감의 소유자로 마치 ??어둠 속 한 가닥 빛줄기?? 같은 인물이다. 책 속 대부분의 블랙 유머도 카친스키의 것이다. 아마 그의 죽음을 통해 레마르크는 전쟁은 희망의 여지도 없는, 무참한 살육의 현장이라는 걸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또 보이머가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잃어버린 청년다운 순수함과 정열,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린 세계 속에서 그가 경험하는 혼돈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전쟁으로 가난해진 집, 위암에 걸린 어머니와 몇 개월 동안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식구들에게선 전쟁의 색깔이 짙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머니의 애정, 보이머의 방과 그가 입던 옷, 읽던 시, 쓰던 글 ? 예전 그의 정열의 산물이었던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전쟁을 경험하고 난 뒤 두 번 다시 같은 태도로 대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무언가 엄청난 일을 겪게 되면 그 후로는 같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많은 공감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포탄에 맞아 머리가 날라간 동료들, 가스에 질식해서 굳은 변사체들을 그리면서,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걱정 마시라고 의젓하게 대답하는 보이머의 자세 또한 읽는 사람을 숙연케 한다. 그 당시에 전쟁을 미친 듯이 선전하고 다녔던 어른들에 비해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보이머는 성숙했고, 책임감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진실, 그리고 국가 사이의 이해 관계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전쟁의 큰 형태보다는 주목받지 않는, 하지만 전쟁의 가장 근본적이며 심각한 문제인 인간성의 희생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큰 이슈였던 이라크 파병이나, 부시의 이라크/미국 전쟁에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상자들과 경제적 손해를 생각해서 반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나 그밖의 표면적인 전쟁의 상흔보다, 막상 그 전쟁에 참가하는 병사들의 상처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