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나서 압록강은흐른다

미륵의 어린 시절은, 내가 꿈꾸던 옛날 그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흙도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그리고 만화 등에서만 봤던 미륵의 어린 시절 풍경은 매우 낯설기만 했다. 어린 시절의 미륵은 내가 바래왔던, 그리고 꿈꿔왔던 그 날들이었다. 깨끗하고 고민거리가 없는 아이들의 낙원, 그런 좋은 풍경에서 천천히 공부하고 마음껏 뛰놀기도 하며 자라난 미륵이 참 부러웠다.
어릴 적 미륵은 사촌인 수암과 함께 서당에서 구식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미륵이 커나감에 따라 조선이라는 나라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식 교육이라고 말하는 서양문화가 들어오고 그것을 가르치는 학교도 세워졌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에 입학한 미륵은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져 도중에 학교를 그만 두고 더 시골로 내려가 요양…(생략)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했다. 그래서 미륵은 유럽으로 간다는 어릴 적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상하이로 망명하여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압록강은 흐른다`의 내용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미륵은 무슨 마음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일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것일까? 그가 독일까지 오게 된 것은, 마음 속에 갖고 있던 특별한 꿈을 이루기 위한 모진 마음다짐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곧 결론이 났다. 천천히 미륵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독일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어릴 적의 미륵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건강이 나빠지자 어머니의 소원대로 학교를 그만두고 쉬었다. 미륵은 자신의 감정은 일단 접고 부모님의 소원대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효`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륵은 그것으로 만족한 삶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무언가 허전한 느낌. 미륵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3.1운동 후 고향집에서 어머니의 망명 권유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미륵의 마음은 걱정, 근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마음을 고쳐먹고 독일로 향하면서 미륵은 새로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이미륵 개인의 자전 소설이기만 한 건 아니다. 특별한 감정 표현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은 단순한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구한말에서 일제 침략기에 이르는 격동기의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서당에서 구식 교육을 받다가 신식학교에서 받는 충격과 혼란스러움, 좌절, 도전, 의학도로서의 생활, 그리고 삼일운동, 일제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압록강을 넘는 과정이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독일의 중학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독일인에게도 감동을 주는 자서전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땐 `독일까지 진출해서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글을 쓰다니,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찌 보면 미륵은 그래도 성공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조국을 탈출해서 독일이긴 하지만 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고, 또 독일인들의 찬사를 받는 작품을 쓴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담담하게만 써 내려간 것처럼 보이는 이 책 속에는 조국을 등져야했던 미륵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압록강은 흐른다`란 이 책의 제목부터가 그렇다. 압록강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사람들 얼굴을 거의 알아볼 만큼 폭이 좁다. 그러나 강의 좁은 폭과는 달리 압록강의 이쪽과 저쪽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끊임없이 흐르는 압록강은 이쪽과 저쪽을 걸어서는 갈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륵은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며 이 자서전을 썼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건널 수 없는,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모두 담아 건넜던 그 압록강을 꿈꾸며. 어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기다리고 있을 그 고향집을 꿈꾸며, 자신의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꿈꾸면서 말이다.
책을 덮으며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뿐만 아니라 모든 강이 흐르고, 모든 바다가 흐르고, 시간이 흐른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이 시간, 지금 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