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를 읽고 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이 소설의 원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음악을 틀어놓고 읽었다. 감성으로나마 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고대로 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먹고 살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이념과 사상에서 더 이상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더 높은 곳으로의 욕망이 꿈틀대던 시대. 그래서 자유를 찾아 또는 허무를 찾아 자살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던 시대에 성장기를 겪게 되어버린 하루키가 표현하고자 한 시대적 상황.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한 마디로 `구멍`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잃어버리거나 뚫리거나 파내어지거나 어떤 비어져버린 공간을 느끼게 한다. 무엇인가를 담기보다는 타인의 의지에 의해 당하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주로 주인공들은 모든 것에 결여된 의지와 우유부단하고 나태한 성격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마도 이래서 제목이 바뀐 원인도 `노…(생략)

희망이자 미래이자 그가 앞으로 전진해야만 하는 사랑이다. 그는 계속 두 세계를 오가며 방황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성장기의 방황의 모티브로 선과 악을 택했지만 하루키는 바로 이 두 여인과의 사랑을 방황의 모티브로 잡은 것 같다.
방황이란 언제가는 반드시 끝나게 되어있다. 나오코가 죽음으로써 자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세계.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방황은 거칠고 무겁게 그리고 또는 도발적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폭풍은 멎었고 하루키가 그 시대를 회상하며 자전적인 소설을 쓸 수도 있었던 거다.
누구에게나 방황하는 시기는 있게 마련이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에게도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는 뭐든 무척 힘들어 했었던 거 같다. 덕분에 나도 내 성장기를 다시 회상해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고통이 지금의 성숙을 나았다. 뭐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나보다. 한 세계를 파괴하고 우뚝 선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쯤은 다들 그 때를 회상하며 웃고들 있을 것이다... 나와 하루키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참 냉소적인 제목이다 싶었다. 원제는 아니었지만 잘못된 이해일까 싶어 섣불리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소설에는 참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 잔인한 행동이 소설 속에는 그리 잔인하다거나 서글프다거나, 절망적이라거나 하는 시각으로는 그려지지 않아 자살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그래, 그렇구나. 그가 죽었구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나의 시각으로는 예상컨데 아마도 영원히 이해 못할 사람인 듯 싶다. 와타나베뿐만이 아니다, 그의 선배, 그리고 미도리 아사코 모두.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드넓게 펼쳐진 숲 초원이 끝나는 자리에 숨겨져 있는 우물 속에 고개를 디밀게 되었을 때, 이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까 그것마저도 두렵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들은 왜 자살을 하는 것인가였다. 삶이 힘겨웠던 것도 아니오, 심경에 변화가 생길만한 커다란 사건이 생겼던 것도 아니다 이들은 한순간 존재조차 없었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죽어갔다. 그것은 나로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살아있다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여자 미도리, 그리고 현실, 혹은 사회와 유리된 듯 공허한 부유감으로 떠도는 아사코 라는 여자. 이들 중에 와타나베는 결국 미도리를 선택한다. 아마도 내 짧은 이해력으로 이것이 그가 현실에 발을 디디는 시작점을 내딛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곱씹으며 상실의 시대는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것이 소탈한 느낌이다. 어느 정도 해석하고자 하는 고민도 털어버리고 그들의 행동과 정밀한 묘사, 툭툭 터지는 농담들. 나쁘지 않았다. 시험을 앞두고 촉박히 읽은 것이 마음에 걸려 다음 번에는 내 돈으로 구입하여 읽고 싶다는 것이 소망이긴 하지만. 언젠가 대학생이 되고 그리고 또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다.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사랑,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사랑, 그리고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기즈키, 레이코, 나가사와와 하쓰미 이런 등장 인물들의 방황을 보면서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친구 기즈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나오코 언니의 이유 없는 자살, 그리고 하쓰미의 방황과 자살, 나오코의 자살. 참으로 많은 인물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본다. 현실의 힘겨움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자살을 접는다. 그저 한 밤중에 비오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고 스스로를 달래며 내일을 맞이한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에서는 잘도 죽어 나간다.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소설처럼 이었다면 이미 죽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간다. 이런 대리 만족의 결과가 자살을 꿈꾸던 많은 젊은이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나는 나가사와 선배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전형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고 이런 인물을 우리는 존경하고 동시에 비난도 한다. 시샘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집을 가지고 자신도 청춘을 방황하고 극복했다고 할 것이다.(물론 여기서는 나가사와 선배를 좀더 멋지게 그리긴 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에게 오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아직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장에서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부르며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서 울부짖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상실의 시대에 대한 열광이 식는 날이 아마도 방황의 끝이던가 아니면 체념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몇년후에 다시 읽으면 그때는 느낌이 또 다른 책이라고들 한다.
나도 몇년후에 이 책을 읽고 또다른 뭔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