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을 읽고

Name: 운수좋은 날을 읽고 - 탐구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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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운수좋은 날을 읽고
비 오는 날 티비에 나오는 파업소식은 가뜩이나 흐린 마음에 더 그림자를 드리운다. 세월이 흘러도 고생하는 이의 손마디에는 편안함이 어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마침 고개를 돌 린 곳에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바로 ‘운수좋은 날’이었다. 문득 뭐가 그리 운수가 좋은 날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바깥에 흩뿌리는 이 무거운 일상에서 운수가 좋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고이 모셔두었던(?) 책을 펴들었다.
박첨지는 인력거꾼이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 노동자로, 부인과 갓난애기가 하나 있는 가장이다. 부인은 며칠전 좁쌀밥을 과식해서 배탈이 나더니 지금도 아파 누워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도 박첨지의 하루벌이일을 막을 정도로 영 찜찜한 행동을 했다. 그 덕분에 박첨지는 일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억제치 못하고 여간 안절부절하는 것이 아니다.
며칠 동안 아내는 아…(생략)

튼튼해야 하련만 오히려 더 아프니 가난을 벗어나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박첨지의 불안이 점점 커짐에 따라 내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이 순박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을 한 박첨지에게도 가끔은 운수좋은 날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까닭에 차라리 돈을 적게 벌더라도 적당히 접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 돈으로 아내 병원에라도 데려가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박첨지는 끝내 무엇에라도 씌인 양 빗길을 내달리며 인력거를 끌 뿐이었다. 이미 포기해 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빗물일까 땀일까 아니면... 집 근처에 이르러 멈춰버린 시간은 운명의 시간이었을까?
차마 집으로 막바로 가지를 못하고 술집으로 향해야만 했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상황을 확인하기가 겁이 났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쉬라는 손길을 뿌리치고 나왔는데 너무 운수가 좋은 날은 마치 무엇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을까 근심했던 것이다. 가고 싶지 않지만 가서 확인해야 한다. 아내가 며칠전부터 입에 달아 불렀던 설렁탕을 한 냄비 사들고 휘청휘청 돌아온 집은 애기의 요란한 젖빠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마치 박첨지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원망하는 소리처럼 온집을 울려퍼진다.
박첨지의 아내는 죽기 직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젖을 무시로 쪽쪽 빠는 아기를 바라보며 얼마나 통곡했을까. 험한 욕일망정 자신을 생각해주는 남편을 생각하며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앙상한 손으로 아기를 보듬어안고 이 힘든 이승의 무게를 짊어져야하는 아기를 위해 마지막 염원을 드리고 있었을까. 금방이라도 박첨지가 설렁탕을 들고 걸걸한 욕으로 자신을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상을 보았을까.
이도 저도 다 불쌍하다. 박첨지도 불쌍하다. 박첨지의 아내도 불쌍하다. 제 에미가 죽은 걸 모르는 갓난애기도 불쌍하기만 하다. 불쌍하다고 여기는 나 자신도 불쌍하다. 괜히 애궃은 하늘만 미워보인다. 박첨지의 머리 위로 쏟아진 빗방울이 저 하늘의 속마음이었을까. 운수좋은 날은 결코 달갑지 않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