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을 읽고 인간 실격

인간 실격
37살 나이에 요절한 이 작가는 일본의 여러 문인, 한국의 여러 문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쓴 소설 중에서도 [인간실격]은 마지막에 내놓은 작품이면서 자신의 생애를 풀어쓴 것 같은 자전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통상적인 자전소설과는 코드가 좀 다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소리를 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반항`한 번 못하는 유약한 한 젊은이가 모순과 잔인함과 비열함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파멸하여 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처럼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들은 말로는 사랑은 신봉하면서, 모든 것이 허위와 거짓과 비열로 무장한 채 남을 제치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평범하게` 그들처럼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잔인하게 살아가야 한다. 순수한 영혼은 살아갈 수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유약하고 나약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현실의…(생략)

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면서 오만하게 지평선을 응시하며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스스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간이라는 것이 보통 문학 속에 등장을 할 때면 굉장히 난삽하거나 고차원적인 얘기들로 끌어가려는 태도가 저변에 깔리게 된다. 그러면 눈이 글을 따라 가고 있어도 생각의 단락은 끊어지는 읽는 맛도 줄어들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작품은 소설로서 읽는 재미와 함께 진지한 무엇인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겨놓고 있다.
이번에 다사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은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처럼 차분하고 어둡다.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이토록 패배하고 염세적인 삶 속에서 보내고 있을까. 건전한 가치와 상식은 간데없고 주색에 빠져있는 군상.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젖 먹던 힘마저 빠진 인간의 모습이 느껴진다.
삶을 산다는 일이란 참 힘든 일이다. 최근 들어 그걸 더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삶의 요소들이 저마다 시차를 두고 찾아온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 젊을 때는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고, 나이가 들면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인생에 대해 방황하고 좌절하고, 그로인해 파괴하는 일들은 모두 젊은 시절에 찾아온다. 성년이 되면 치러야 하는 할례의식처럼 고난을 던져주는 건 인간이 동물이 아닌 인간이기 위해 거쳐야할 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식을 통과해야만 어른이 되는 것처럼.
어쨌거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책속의 요조도 수기의 끝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하나만을 깨닫게 됐다. 모든 것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라면 이제 길은 갈라진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요조의 희생은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 이가 있어야 희생이라 불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단지 낭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