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비극 햄릿 햄릿

인간적인 비극
휴머니즘(humanism). 우리는 흔히 ‘인간적인’이란 말을 정겹고 따뜻하거나 투박한 느낌을 기대하며 붙인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대표작 중 하나인 ‘햄릿’에 ‘인간적인’을 붙이고 싶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인간적인’ 느낌들을 기대하진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적인’이란, 정말 인간적이어서 인물의 성격이 정확하거나 뚜렷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함과 동시에 잔인함 등을 말한다.
햄릿을 보아라. 그는 성격부터가 그 얼마나 우유부단한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개의치 않아 하던 중 유령으로부터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걸 전해 듣고 확신에 가득 찬 분노를 품는다. 만약 그 아버지 유령의 말이 없었다면 햄릿은 그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숙부를 향해 확증 없는 적개심과 분노를 느껴야 했을 터. 유령의 존재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고 있던 햄릿에게 잠시나마 어떤 탈출구 역할을 해줬을 것이다.…(생략)

보내졌을 때 자신을 죽이란 명이 쓰여 있던 숙부의 서신을 아무렇지 않게, 함께 간 친구 두 명을 죽여라 라는 명으로 고쳐 쓰던 모습도 그렇고 레어티즈에게 사과가 아닌 화해를 원한 일 등도 햄릿의 잔인한 면을 보여준다. 우유부단함을 깨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잔인함이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질적으로도 보이는 두 성격은 끝까지 햄릿과 함께한다.
햄릿처럼 잔인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은 사실 작품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 애초 모든 인물들에게서 이 성격들이 보이는 까닭이다. 클라디우스는 전전긍긍 햄릿을 죽이려하지만, 사실 마지막에 결투를 위장한 살해 계획을 실행하기까지 그에겐 많은 기회가 있었다. 이는 그의 우유부단함이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돌아서면 살인 계획을 세운다거나 형의 아내와 결혼해버린 사실 등은 그의 잔인함이다. 어머니 거트루드에겐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돼 그의 동생과 결혼해버렸으면서 아들에겐 이해를 바라는 점이 잔인하며 햄릿을 걱정하는 어머니이면서 진정 어머니같은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 부분 등이 우유부단하다. 다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인간은 그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로 그 누구도 뚜렷하지 못하다. 우유부단한 것이다. 동정심이라던가 선한 마음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언제든 상황만 주어진다면, 혹은 익숙해진다면 발휘할 수 있는 잔인성이 있다. 꼭 햄릿엔 그런 인간적인 면들이 담겨있지 않은가. 이런 우유부단하지 못한 인물들로 우유부단하게 이야기를 이랬다저랬다 진행시키다가 끝내 비극이란 잔인함으로 끝내는 햄릿은, 그래서 정말로 인간적인 비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