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새의 선물

새의 선물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무슨 책을 빌려야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었다. 책꽂이를 훑어보며 나의 무료함을 달랠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새의 선물??이라는 약간은 두꺼운 책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목 밑에 있는 작가의 이름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1년 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마이너리그??하는 책의 작가인 ??은희경??이란 이름이 써 있었던 것이다. 작가만 보고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새의 선물??을 빌렸다. 책의 첫 장부터 낯설고 어려운 내용들이라 조금은 당황했지만 더욱 집중하여 읽어나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진희는 일찍 엄마를 잃은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깨닫고 어려서부터 정신적 성숙을 끝낸 초등학생으로 나온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 구절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열두 살이면 나는 그 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생략)

친구사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여러 번 펜팔을 하려고 했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진희는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초등학생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어른들 마음 속을 훤히 꿰뚫고 있을 만큼 영리하기도 하다. 작가는 진희의 눈에 비치는 어른들의 가식적이고 어리석은 행동들을 통해 어른들의 ??어른스러움??이란 것들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묘사해 놓았다. 이런 점들을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니 다시 한 번 은희경 작가의 글 솜씨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다음 이야기는 양장점을 하는 ??광진테라 아줌마?? 이야기다. 풍운아적 기질을 갖고 있는 박광진에게 강제를 순결을 잃어 결혼을 하게 된 광진테라 아줌마를 보면 솔직히 좀 답답한 면이 있다. 남편인 박광진은 정치권에서 운동한답시고 돌아다녀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집안 살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을 피며 술 먹고 들어온 날은 광진테라 아줌마에게 폭행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아줌마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며 동네 사람들이 남편 험담을 할 때는 오리려 기를 쓰고 남편을 두둔한다. 어찌 보면 이 ??광진테라 아줌마??라는 캐릭터가 60~70년대의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못난 남편보다 광진테라 아줌마가 더 답답해 보인다.
다시 이모의 이야기로 넘어오면 이모는 펜팔로 만난 군인 이형렬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 첫 데이트를 앞두고 이모는 목욕탕을 갔다 온다고 할머니와 싸우기도 하고 옷장을 다 뒤지면 옷을 고르기도 하며 부산을 떤다. 내가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가 생각나 잠시 웃음이 났다. 나도 그렇게 부산을 떨었던 것 같아서 쑥스러워지기도 했다. 이모는 첫 데이트에 진희를 데리고 나간다. 내 머리로는 어른들 데이트에 초등학생을 데려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모가 자신의 정숙함을 내보이기 위한 것임을 알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진희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먼저 집으로 온다. 저녁 늦게 들어온 이모는 진희에게 이형렬 자랑과 함께 데이트 내용을 신나서 떠들어댔다. 이모의 이런 아이들 같은 유치한 행동들이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에 유쾌함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모의 캐릭터가 제일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삼촌이 서울에 가 있는 사이 진희는 삼촌의 다락방에 쌓여 있는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그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할머니는 이런 진희를 보고 엄마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선물 공세로써 진희를 달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진희는 그 선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책만 읽는다. 그 책들을 읽는 도중 진희는 ??성??에 대한 내용들을 많이 읽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한 스스로가 죄책감에 빠져 고민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걸 보고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꺼려하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오리려 더욱 그런 것들에 부딪히고 바라보고 하면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독하기는 하지만 나도 언젠간 이렇게 해서라도 거부감이 드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올 것 같아 이 방법을 숙지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돌아온 삼촌은 ??허석??이란 친구 한명을 데리고 왔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주위의 남자들을 냉소로 바라보던 진희는 처음으로 허석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허석은 이형렬에게 푹 빠져있는 이모를 좋아하는 눈치인 것 같아 진희는 답답해한다. 진희는 계속 허석을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 가지만 결국 허석은 다시 서울로 떠나게 된다. 진희는 허석이 떠나간 후에 애타게 그를 그리워한다. 나도 중학교 때 대학생 누나를 좋아해 본 적이 있어서 진희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그 누나를 좋아해도 누나는 나를 동생 이상으로 보지 않았었다. 차라리 나를 싫어해도 좋으니까 누나가 나를 남자로 봐 주었으면 하기도 했다. 진희가 바로 그럴 것이다. 허석이 자신을 동생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 때문에 답답한 것이다.
이 때쯤 답답하기만 했던 광진테라 아줌마가 가출을 했다. 전에부터 아줌마가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진희는 벌로 놀라지 않았지만 남편인 박광진은 난리를 쳤다. 처음에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다가 2~3일은 방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아마 이 때 박광진은 소중한 것은 떠나간 후에야 깨닫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을 것이다. 직접 광진테라 아줌마를 찾겠다고 나섰으니까 말이다. 그 동은 아줌마의 아기 재성이는 진희가 돌보고 있었다. 진희는 엄마를 찾으며 애타게 우는 재성이를 보며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진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젼혀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엄마 이야기는 실성해서 자신을 버리고 자살했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나에게도 엄마에 디한 기억이 없다면 어떨까?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만큼 엄마는 나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삼 엄마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광진테라 아줌마도 재성이 걱정을 하는 와중에 남편이 친정으로 찾아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설득하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모에게 최악의 날이 전개되었다. 사랑과 우정이 모두 떠나갔기 때문이다. 이모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경자이모가 이모의 애인인 이형렬을 뺏어갔다. 이모는 경자에 대한 배신감과 이형렬이 떠나갔다는 슬픔에 몇날 며칠을 울었다. 그러는 와중에 허석이 돌아왔고 이모와 허석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나는 허석과 이모의 사랑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는 믿었던 친구와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간 후에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에 빠져있는 상태였고 그 때 이모에게 관심이 있던 허석이 다가왔던 것이다. 이모는 허석이 아니었어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모와 허석이 데이트하는 도중 유지공장에 불이 나고 경자이모가 죽게 되었다. 이모는 경자이모를 미워했던 것을 후회하고 하염없이 울며 자책했다. 그렇게 또 한 차례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모는 더 이상 예전의 이모가 아니었다. 더욱 성숙해져서 이제는 예전의 철없던 이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수많은 어려운 일에 부딪히겠지만 그 때마다 겸허히 나를 반성해 보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일어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에 진희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진희를 데리러 온 것이다. 진희는 아버지를 만났다는 기쁨과 할머니, 이모와의 이별에 대한 슬픔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덤덤히 아버지를 따라간다.

진희처럼 조금 더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아픔을 겪어보고 이겨내 봐야 할 것 같다. 진희와 진희의 이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