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 시인을 찾아서

나에게는 고약한 것이 많습니다
물론 핑계거리를 찾자면 찾아질 것이고 가장 편리하게 대는 변명은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때는 폭신하다가도 거기에 가시를 박자들면 날이 서고
비꼬자들면 바짝 삼은 지푸라기줄이고 싸가지 없자들면 막 말은 없으되 독설이 있고
특히나 조금만 사무적인 어투가 나오면 딱딱하고 싸가지 없고 꼬이기까지 한 것이
튀어나오는데 일상에서도 과히 폭신하게는 굴지 않습니다
마음에 나쁜 것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오래 겪은 이들이나마 그려려니 하는 것이지
겨우 안면이나 아는 이들은 냉정하고 괴팍하다 할 것입니다
가끔은 노인같은 관조의 자세이다가 어느날은 감정을 싣기도 하고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아 내가 뭔가를, 특히나 책을 보고 있을 적에는 옆에
누가 와도 아는척 인사를 하거나 하지도 않고…(생략)

하기 싫어지는 그 고약함 때문입니다
정지용의 향수를 노랫 가락에 섞어 듣고, 조지훈의 나그네를 저녁 놀에 그리며
길을 걸어 시인학교에 가면 김종삼의 시인 학교를 읽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나의 자리가
어느 구석엔가 남아있고 이름만 가물한 신동엽이란 시인의 이름을 나중에는
연예인 이름과 섞어 기억하다 결국엔 신경림의 `여름날`이라는 시집 한켠
`시인의 집`에서 마주한 날이 있었습니다
이육사의 청포도를 해마다 칠월이면 형광등 기억력에도 `내 고장 칠월은...`
하는 그 한줄을 이따금 토해 놓거나 광야라는 제목을 떠올리고, 초등학교때
나온 에메랄드빛 캔디며 봄 마다의 모란에, 혹은 붉은 단풍에 잊혀질 뻔한 그 이름
김영랑을 추억 속 친구처럼 찾아내기도 했었습니다
어린날 귓등으로 들었던 서시보다 중학교 삼학년에 외워 이제껏도 잊지 못하는
자화상이나 어느 크리스마스에 적어 보냈던 십자가라는 제목에 윤동주를 기억하고
버지니아울프란 여자가 궁금해지게 했던 목마와 숙녀, 색 짙은 만추의 감상에
잠기게 했던 세월이 가면이 적혀있는 박인환의 시집을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도하고 차가운 이의 뜻밖의 미소 같았던 부드런 살결같은 시어에 당황한
만해스님의 나룻배와 행인을 곧잘 인용하는 이들이 여직 남아있고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와 더불어 행복이나 깃발이 이따금 나를 울리는 유치환님의
시로서 수첩의 한켠에 또박 또박 적혀진채 있습니다
조지훈, 박두진과 더불어 청록집을 만들었던 시인이라고 배웠던 박목월이란
이름이 남아있고 동네 사랑방 드나들듯하는 인사동 거리에서 `귀천`이란 간판을
마주할 때마다 설레게 하는 귀천만큼이나 인상적인 날개를 썼던 천상병이란 이가
나의 뇌리에서 웃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 시절에 배웠거나 너무나도 흔히 인용되고 인구에 회자되었던 이들의
이름이고 시입니다
청개구리띠 성품으로 구석에 밀어두기엔 반가운 이름들이었고 창 넓은 찻집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멋부린 망중한을 보내기에도 좋은 시들이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권장도서였다구요
내 자신이 책을 권하면서도 권장 목록을 싫어하는 아이러니 앞에 남길 변명이
있다면 나는 권장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다라는 그 하나였을 겁니다
너무나 많은 시집이 있고 많은 시인이 있고 흔하디 흔한 것이 문학 지망생이었으되
작자의 말 마따나 좋은 시는 점점 귀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이 홍수지되 좋은 책이 귀해져 가는 것과 같겠지요
아직 님의 기억에 남은 시의 제목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