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행복한시간

작가가 서 있었던 지점이 내가 선 곳과 지척인 모양이다. 봉사를 열심히 하던 한 아주머니가 어느 늙은 사형수에게 손을 덥석 잡힌 순간을, 작가는 사형수 윤수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 아주머니의 눈빛에 단호한 거부가 서려 있었단다. 음식도 해다줄 수 있고, 돈도 얼마간은 줄 수 있고, 미사도 함께 드릴 수 있지만, 손만은 잡지 않겠다는. 그 지점에서 나는 멈칫했다. 작가는 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내밀한 욕망을 내가 슬며시 감싸쥐고 있다는 걸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작가는 사형제도의 폐지론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에 오뚝 서서 그걸 하나의 소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듯 보이지만, 또 정반대의 세상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보이지만, 실은 고상한 즐거움을 은밀히 누리는 지점에 선 나와, 나와 같은 부류의 심중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점의 상처가 터지지 …(생략)

통으로 직조된 이 소설을 경망스럽게 재단하려 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은 다 옆구리에 끼고도 자살을 세 번이나 시도하고, 그러고도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유정은, 어릴 적 성폭행 당한 상처와 가족의 안일을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외면한 엄마에 대한 상처를 아직도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 그녀가 언감생심 구치소의 종교위원이 되어 만난 사형수, 윤수는 어떤가. 단 한 번의 날개를 펼 기회도 얻지 못하고, 아니 날개가 마르기도 전에 사악한 천적들에게 쫓겨 살면서 온갖 치욕과 모욕으로 옷 입은 그는 잔혹무도한 살인범의 죄를 입고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론을 들어 왈가왈부하기도 아까운 놈 아냐, 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게 하는, 그런 인간형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나 종류가 다른 진탕에서 질척거리며 울어왔다. 하나도 닮지 않았을 법한 두 사람은 서로를 거울처럼 들여다본다. 그들은 두 계절을 보내며 아쉽게 만나지만 상대방의 너덜너덜해진 삶을 꿰매주기에는 충분했다. 신(神)은 내가 원한 건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하던 것은 늘 들어주었다던 누군가의 고백을, 유정은 신랄하게 질겅대왔지만, 그건 신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늘 절묘하게 등을 돌린 윤수의 입에서도 늘 질겅대왔다. 그러니 치기어린, 아니, 악에 받친 복수를 그들은 세상을 향해 품어올 수밖에. 하지만 그들이 마지막으로 질겅대는 고백을 듣자면, 이보다 더 상투적이고 진부할 수는 없다. 사랑합니다, 라니! 작가는 「수도원 기행」을 쓰고 난 후 계속 이럴 참인지, 상당히 은혜로운 종교 위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진짜 인간??으로의 길을 저해한다면 십자가 위의 예수라도 부인할 참이라는 단호함과 절절함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낸다. 윤수의 교수형 앞에서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 차라리 고마웠다는 표현은, 왜 내게 이처럼 눈물을 쏟게 하는지! 작가가 그 속에 들어가 함께 울었구나, 라는 짐작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래서 고맙고 또 감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