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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구달
악(惡). 악(惡) 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어떠한 본능과도 같은 것인가. 아니면, 험한 경쟁의 시대와 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학습되어진, `도전과 응전` 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얻어진 `학습내용의 일종` 인가. 이러한 물음은,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화두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의 하나이며, 아직도 그 근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어떠한 것이 현재 학회에서 우세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어떤 것도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수세기동안 숱한 어려움의 역사를 거쳐왔다. 몇차례의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에는, 전쟁과 화약의 어두운 그림자속에서 떨어야 했으며, 수많은 생명들이 불과 몇몇 제국주의자들의 야심찬 야망과 악(惡)의 자행에 의해 쓰러져가야 했다. 인간의 역사는 피(血)로 얼룩진 역사이며, 이러한 피의 숙청이 있고난 후에야 어…(생략)
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생적으로 악이라는 본성을 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악(惡)의 본성. 그리고 선(善). 이 양면성을 가진 두가지 본성은 모든 생명체에 내재하고 있다. 침팬지는 각각의 집단을 형성하며 자기 집단에 속한 동료끼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하며 극단적인 상황에서라도 우애의 모습을 보인다. 동료가 어려움에 처하면 함께 도와주며, 적이 나타났을 떄 위험 신호를 알려 구출해내기도 하는 등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동체적인 모습, 이를테면 선(善) 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침팬지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걸 목격한 다른 침팬지가 물에 뛰어들어 그 침팬지를 구하고 자신은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사회에서도 보기드문 참으로 감동(感動)적인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침팬지들이 싸우는 모습은 참으로 잔혹하다. 서로의 동료를 집단구타하여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거나, 임신한 어미침팬지를 때려 아기까지 죽게한 이야기 등은 단순히 침팬지를 선(善) 의 동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강가에 몰래 숨어있다가, 어떤 침팬지가 그 영역을 지나가는 걸 목격한 후, 수마리의 침팬지가 달려들어 다른 침팬지를 마구 공격하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후 그 침팬지를 먹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것은, 침팬지안에 내재된 선이 아닌, 무언가 악(惡)의 본성과도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왜일까.. 무슨 이유때문에 저 침팬지들은 그토록 잔인하게 서로를 학살하는 것일까..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모습, 계획적으로 다른 침팬지를 공격하는 모습들.. 등은 인간 못지 않은 잔학함과 섬뜻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제인 구달 박사는 동물학자이고,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는다. 그러나 제인구달박사는 다른 동물학자들과는 크게다르다. 그녀는 동물의 본성을 연구하며 그것을 인간과 비교하여 앞으로 인간이 걸어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필체와 사상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침팬지를 관찰하고 그 본성을 탐구하는 과정의 세세한 묘사와 그것을 인간과 연결시키는 그녀의 눈동자가 애타게 말하고 있는 무언가를 깨달아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다. 인간, 그리고 동물. 그리고 본성. 이 세 가지 필두를 놓고 출발한 그녀의 책속에서, 어렴풋이나마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인간과 동물안에 내재된 두 가지 본성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확연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따라서 동물과는 달리 사리분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며, 선(善) 이라는 본성이 악(惡) 의 본성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만큼의 성숙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성숙함은 인간의 뇌, 즉 사고력이 그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항상 피로 얼룩져 왔고 침팬지가 동료 침팬지를 학살하는 것과도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 인공청소기와 같이 수많은 생명들을 학살했던 잔인했던 세계전쟁, 그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명분없는 미국의 전쟁, 그리고 우리나라가 지난 역사속에서 겪어왔던 피끓는 식민주의의 역사,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발하고 있는 유혈전쟁.. 분명 인간은 그 모든 악(惡)의 현장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그를 제지할 수 있는 충분한 성숙함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라는 영역을 벗어나, 동물로, 거대한 자연의 영역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인간은 그 어떠한 선(善)의 가책도 없이 무분별하고, 잔인하게, 그 모든것을 죽여가고 있으며 미개한 동물은 소리없이 짓밟히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멍이 들고 핏줄이 터져 괴로움속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그런 악(惡)의 댓가는 이제 서서히 인간에게 찾아오고 있다.
침팬지들이 갖고 있는 악과 선. 물론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와는 별도적으로 부과된, 진화라는 우연이 선물한 고등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 고등의 지능은, 인간의 본성에 잠재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악과 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표출될 수 있는 이러한 본성들을 제지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를 보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궂이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불쌍하다... 처량하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본성이다. 이것을 우리는 크게 선(善)이라고 통칭할 수 있으며 반면 누군가에게 막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그를 죽이고 싶다...` 따위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치밀면 우리는 그것을 선에 반하는 악(惡)으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본성이 그대로 표출되었다가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선만이 행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악이라는 놈은 한 번 표출되기만 하면 선보다도 더한, 그에 몇곱절에 해당하는 파괴와 자멸을 가져오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성을 억제하는,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고 의식하려는 노력에 의한 `지능`이라는 것. 아무리 화가나도 태연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그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불쌍한 사람을 보았을 때 단순한 동정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무언가 그를 위해 해줄 일이 없을까 라고 고민할 수 있는 것.. 바로 이러한 면이 있기에, 우리 인간의 역사는 비록 피로 얼룩지었을지언정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악의 본성에 관한 고찰의 시작은 그 근원에서 시작된다. 본능적으로 내재된 개념인가. 아니면 학습의 결과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근원이 어디인지를 밝혀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을 어떻게 인간의 역사가 옳게 진보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느냐에 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서, 시작과 끝을 탐구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지만, `근원`에만 매달려 현실성과 미래성을 잃어버린다면 오히려 우리 인간의 자멸을 가져오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악의 본성은 유전자의 생존원리에 따른 것으로써 인간으로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단정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악을 자행하는데에 있어서 끔찍하게도 일부 그 당위성과 공정성을 인정받는 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알 수 있었다. 즉 그 근원을 애써 탐구하려는 노력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진보시켜야 할 것인지,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진정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악을 자행해놓고도 그 어떤 선의 가책도 받지 않는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 위해 그 `끝` 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갖는 참다운 가치를. 그리고 그 `끝`을 창조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달렸다는 사실이며, 그 끝이 처참한 파괴의 현장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공생공영하는 아름다운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 나의 가슴은 무언가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제인구달의 박사의 눈동자도 나를 향한 맑은 웃음을 띄고 있는듯 했다. 깨달은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그녀는 다시한 번 깨닫게 했다.
희망의 이유는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역사의 현장에 희망이라는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어쩌면 그 희망은 좌절될 수도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인간은, 본성에 얽매인 표유류의 별종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저 한낱 역사속에서 수많은 악의 자행을 하고 멸종된 존재의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떤 것이 진정한 가치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는, 나 하나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위대한 영장` 으로 더욱 진보해 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침팬지에 대해 더욱 궁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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