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거리를 읽고 중국인거리

노란색으로 물든 유년의 기억, 그 산산히 흩어진 조각들
- 오정희, 중국인 거리를 읽고 -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쥐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오정희, 중국인 거리 中
처음에 이 책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였다. 그 때 수능 기출문제라면서 문제집의 한 장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던 ‘중국인거리’의 내용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처음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두 줄 읽어내려 가던 것이, 나중에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지문을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한 문단 한 문단을 눈길로 따라 읽을 때 마다 나는 노란 색으로 점칠된 중국인 거리의 모습과, 해인초 냄새가 지면을 넘어 내 코끝을 스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김승옥과 더불어 오정희의 작품…(생략)

분하게 그러나 처절한 느낌으로 묘사해 나간다.
여기서 나는 불과 몇 십년 전의 과거 전 후 한국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전쟁 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과, 또 분단의 아픔을 다룬 이야기들은 많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그닥 생생한 감정을 전달해 주지 못했다. 그저 하나의 소설로서만, 문제 풀이의 용도로 읽혀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오정희의 작품인 이 ‘중국인 거리’는 나에게 전 후에 놓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인상 깊을 정도로 깊게 묘사해 주었다. 특히 남자들의 삶이 아닌 여자들의 비참했던 삶의 현장을 말이다. 이 소설에서 남자의 비중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간간히 나오는 중국인 남자와, 아버지, 흑인 병사 정도만 이 소설에 잠깐씩 언급되어 있다. 아마 화자는, 이러한 남자들의 역할보다도 여성들의 입장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당대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불우한 삶을 작품 밖으로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이 소설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느낌을 글로 설명하려니, 나의 부족한 글 실력 때문에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한번 쯤 읽어보라고 권유해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인초 냄새 풍기는 중국인 거리를 걸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소설이 건네주는, 잊지 못할 만큼의 강렬한 색채를 느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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