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밖으로 행군하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나는 이 책의 저자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을 통해 만났었다. 책을 통해 저자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열정 그 자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자, 그 누구보다 강한 열정이 그녀와 그녀가 내 놓은 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반하게 만들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이제까지 내놓았던 그녀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비야 하면 아직도 사람들은 `바람의 딸` 오지여행가를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내 놓은 책마다 주로 그런 류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었으니 말이다. 허나 이제 그녀는 긴급구호요원으로 완전히 변신해 있어 새로웠다.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보자면, 저자가 실제로 긴급구호활동을 하면서 겪는 일상과 소감을 적어 내려간 책이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이라크, 시베라리온, 라이베리아, …(생략)

을 이야기하면서 부조리한 한 측면을 들쳐내고 있다. 저자의 활약상도 활약상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어린 생명들이 죽어 가는 것에 약간의 손길이라도 주면 그것이 곧 소생할 힘을 줄수 있다는 것에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변신의 귀재이고, 열정의 화신인 그녀가 긴급구호요원이 된 것은 5년 전부터라고 적혀있었다. 세계 오지 여행을 하는 가운데 설사같이 시시한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데 필요한 건 링거 한 병, 그 한 병이 단돈 800원이라는 사실을 오지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프리카, 중동으로 계속 여행하면서 그런 아이들을 직접 돕는 사람들과 단체를 보고 마음이 조금씩 끌렸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하기는 하지만 귀국 후에는 대부분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소중한 경험을 잊고 사는 게 현실 아닌가. 해외 만이 아니라 국내의 어려운 이웃도 못 본 채 살아가는데 말이다.
언젠가 국토 종단을 마친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국제구호단체에서 난민을 돕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국제구호단체 회장 전화였다. 역사에서는 우연도 작용하지만 필연의 요소도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아마도 한비야 역시 자신의 경험에 의해 필연적으로 국제 구호의 길로 나서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는 미완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땅덩이를 가진 국가는 지도에서도 크게 그려지지만 우리의 눈이 세상을 지각하는 기준은 영토의 크기가 아닌 경제력이었다. 유럽의 작은 나라들은 오히려 쉽게 기억하면서 아프리카의 큰 나라들 이름은 잘 알지 못하는... 그들 나라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과도 같다 하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국가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들에게도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의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던 국가들이 하나둘씩 그려질 것이다. 한비야 님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할 정도로 나의 그릇은 크지 않기에, 난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부터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