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귀고리 소녀를 읽고 진주 귀고리 소녀1

정지된 풍경, 그 사이로 흐르는 빛...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고..)
표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망설임없이 집어든 책이었다. 교보문고 외서 코너에서 첫 줄을 읽었을 땐 `평이한 문장이구나`싶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은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마냥 자기표현이 적으며 늘 어둠 속에 잠겨있는 인상들이다. 작가의 완벽한 소설적 상상력이라기엔 그 암울함의 농도가 사실적이어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는데-작가의 허구적 인물인 그리트-여기서는 베르메르의 뮤즈이자 이 아름다운 표지의 주인공인 소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뒷골목 가정에서 순전히 가난 때문에 하녀로 팔려온 인물로 설정되어 집주인이며 과작을 즐기는 화가 베르메르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처음 그리트를 그녀의 집, 부엌에서 만나 몇 마디 밖에 건네지 않았던 베르메르는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 때문이었는지 시종일관 그 …(생략)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정작 가슴은 비어 껍데기 뿐인 삶에 비하면, 이들은 아주 소중한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있을 수 있는 시간, 미쳐 날뛰는 꿈과 환상을 화가의 붓 끝에서 새롭게 표현해낼 수 있는 시간을 이들은 서로에게 베풀었고 오롯히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것을 간직했으니 말이다.
기대 밖으로 대단하거나, 문장이 섬세하거나 유려한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편의 명화에 이렇게 사실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은 놀랍다. 사실적인 묘사와 담담한 서술방식이지만-그녀의 소설로서 이 북구의 모나리자는 특유의 신비감과 매혹을 부각시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느 서평에서 읽으니 여성분들이 읽어야 그 감동이 새로울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동감이다. 모든 분들이 읽어서 공감을 느끼면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쁠테지만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결이 처음, 베르메르의 손 끝에 닿은 그리텐의 떨림마냥 흥분이 되고 와닿으리라 생각된다.
베르메르, 그리텐. 정지된 그들의 풍경. 그리고 그 사이로 강물처럼 흐르는 빛은 은밀한 그들의 속내를 닮은 초상화 속 까만 배경과도 같습니다. 밤처럼 은밀하고 어두운 사랑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다양하며 매혹적인 색깔의 빛들이 수놓아져있는 별빛 가득한 어둠과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