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체호프 단편선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는 소설가로나 희곡작가로나 두말할 것 없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다. 그의 희곡은 재치 있고 감동적이며 그의 소설에는 기지 넘치는 반전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읽는 즐거움’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의 작품들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지난해 동아리 희곡분과 학습 때 읽었던 체호프의 희곡들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인간의 삶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그 생명력 넘치는 위트는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그의 소설집을 읽었다. 하지만 그 책은 이제까지 한국에서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번역했기에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앞서 내가 느꼈던 인간사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얼마나 삶을, 인간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짧은 글로써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 그리고 감동을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린 시절 글짓기를 하…(생략)

했으며 예리하게 파악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웬만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 고전문학 <구운몽>처럼 한낱 꿈속에서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무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거울>, 자신의 상관 뒤에서 재채기한 죄 때문에 심한 걱정과 죄책감에 시달려 끝내는 죽게 되는 어떤 하급관리의 소심한 모습 속에서 상하의 구별이 엄격한 조직사회 때문에 소외되고, 약자로 취급되어버리는 개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관리의 죽음>, 작가 지망생인 한 중년여성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듣게 되지만,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작품에 화가 나서 그녀를 죽이게 되는 엽기적인 내용을 담은 <드라마>, 사형과 종신형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된 내기로 시작된 어떤 변호사의 15년간의 감옥생활. 그 속에서 궁극적 진리를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잘 보여준 <내기>, 진정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자신의 허영과 사치, 불륜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자신을 끝까지 챙겨주던 남편마저 죽음으로 몰게 되는 내용을 담은 <베짱이>등등 많은 주옥같은 단편소설이 이 한편의 책속에 잘 녹아내려 있다.
그의 작품들은 분명한 선악에 대한 판단이 없다. 독자에게 마지막 판단을 맡기고 작가는 그 시선에서 벗어나는 그의 글쓰기에는 그가 겪었던 삶의 애환과 모습 그리고 생각들이 절제된 시각과 구도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냉철한 글쓰기와 시각은 후세대 많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글쓰기의 접근과 이해를 가능케 했다는 점은 그의 선각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전이라고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그 속에서 참신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을 읽는데 무척이나 좋을 듯싶다. 어찌되었든 그의 작품의 가치는 유쾌하고 매력적으로 인간사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문제를 체호프만큼 즐겁게 그리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써놓고 보니 칭찬 일색이라 왠지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한번뿐, 후회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 그것이 해피엔딩을 위한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