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노트 타나토노트

??타나토노트??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면서 뭔가 심오한 뜻을 담고 있을 듯한 다섯 글자의 매력적인 단어이다. 언제나 인류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도전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어낸 말이기도 하다. 타나토노트(thanatonaute)는 죽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thanatos와 항해자를 뜻하는 nautes의 합성어로 ??영계 탐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는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즉, 죽음, 그 후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기상천외한 난제에 돌입한다. 사후세계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기 때문에 그 구조와 내용, 혹은 그 존재여부 조차 밝혀지지 않은 궁극의 비밀 중 하나이다. 전편 ??개미??보다 스케일은 대폭 줄었지만, 내용적인 밀집도와 창의적인 발상 등에서는 한 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타나토노트??는 내 온 정신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죽음 후에는 무엇이 펼쳐질까…(생략)

심판받은 영혼들이 들어가는 ??빛의 산??이 그것이다. 1천계는 빛의 유혹을 받아 영혼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푸른색 공간, 2천계는 온갖 두려움과 혐오감, 자멸감이 밀려오는 암흑 공간, 3천계는 내면의 쾌락과 환상이 들추어지는 적색 공간, 4천계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지나쳐 가는 주황색 공간, 5천계는 모든 것을 깨우치게 되는 전지의 노란색 공간, 6천계는 완벽함 아름다움이 자기 혐오감마저 자아내게 만드는 절대 미의 녹색 공간, 7천계는 천사와 악마를 만나 최후의 심판을 받는 백색 공간, 마지막으로 빛의 산은 천사들에게마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다. 다만, 심판받은 영혼들이 그곳으로 나아갈 뿐이다.
작가가 사후세계를 이러한 단계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통설적으로 인간이 죽으면 자신의 생애가 빠른 시간 내에 스쳐지나가는 것을 본다고 한다. 그 발상에 착안하여 볼 때, ??타나토노트??의 사후세계는 인간의 육체를 떠난 영혼이 자신이 몇십년간 살아온 행적들을 곱씹어 보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유혹을 느끼기도 하고, 고통 받기도 하고, 쾌락을 느끼기도 하며, 지루한 인생의 여정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깨우쳤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무지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더 아름다운 것을 갈망하나 그 아름다움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삶의 과정은 죽음의 최후에 이르러 ??반성?? 이란 형태로 일단락되고 자신의 무지와 무력함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전지전능의 절대자??로부터 심판받기를 기다린다. 신이나 천사, 악마 등과 같은 절대자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식하여 창조해 낸 개념이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후 세계의 우리, 영혼에 관하여 그들이 정해 놓은 세계에서 그들의 심판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책에서 심판을 받고 다음 삶으로 넘어가는 영혼이 자신의 후세를 결정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 다만 전생의 선행과 악행의 의해 점수가 결정되고, 그 범위 내에서 다음 삶의 조건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후 세계에서조차 점수로 영혼들을 줄세운다는 발상은 참 독특한 것이다. 더구나 샌드위치 가게에서 빵 사이에 넣을 야채를 고르듯이 자신의 다음 삶을 결정하는 영혼들을 상상하면 웃음마저 나온다. 천사들은 영혼에게 나머지 부분은 의지대로 행동하라고 한다. 의지대로 행동하여도 정해진 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사람들이 더 낳은 삶을 갈망할 필요가 있을까? 강한 의지를 갖고 성실한 삶을 살건, 나약한 마음으로 방탕한 삶을 살건 똑같이 정해진 삶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면 진정으로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하기에 절대자들이 인간 세계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영혼의 기억 속에 망각을 심는 것이 아닐까. 이 점은 나에게 정해진 삶에 대한 절망 보다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다가온다. 내 미래에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성공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의지가 정해진 삶에 대한 시각마저 바꾸어 자신의 새로운 삶으로 이끌고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러한 시각조차도 미리 정해진 것이었던지.
영혼은 시각, 청각 등을 비롯한 인간의 감각들은 물론이요, 적외선, X선 등 그 어떤 감지기를 동원해도 그 존재를 파악할 길이 없다. 물리 법칙이 영혼에 적용되는지는 물론이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존재하기는 하는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혼은 사상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질 수도 있고, 물질적인 관점에서도 다루어질 수도 있다. 여러 종교에서 영혼의 환생을 주장하고 있고, 내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교리를 갖고 있다.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아무런 과학적 실증도 없이 그런 이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것이기에 전면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영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존재이다. 그저 생명의 원동력이 되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영적이 존재라는 말로 무마할 뿐이다. 그래도 여기서의 영혼은 사상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히 생각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영혼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는 천국이라는 장소도 막연하게 ??하느님이 계시는 곳??일 뿐 공간상에 나타낼 만한 근거나 이유는 없다.
여기서 타나토노트에 주목할 점은 영혼을 전면적으로 물질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영혼이 타나토드롬에서 유체이탈을 일으킬 때에 86.4kHz라는 정확한 주파수를 낸다. 천문학자가 영계 탐사팀에 합류하여 그 주파수를 추적해서 영혼의 공간적인 위치를 추적한다는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다. 영혼들이 30여분이 조금 넘는 비행을 거쳐 은하 중심 블랙홀에 다다른다는 대목에서는 그 엽기성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조금 과학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지구와 은하 중심 사이의 거리는 3만광년 정도 인데, 이 거리를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유체이탈 시에 왜 그러한 파장이 검출되는지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천국인가? 모든 생명체가 죽어 영혼이 되어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모이는 곳이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무지막지한 중력과 X선을 자랑하는 천체란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인류가 영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블랙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블랙홀은 커다란 별이 최후의 폭발을 일으킬 때 중심부가 극도로 수축하여 생성되는 실재적인 천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생각 속에서 블랙홀은 천체이지만, 영혼의 세계에서 블랙홀은 천사들이 살고 있는 빛의 산으로의 입구일 지도 모른다. 영혼을 물질의 관점에서 전개해 놓고는 온갖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 점에 대해서는 작품에 대해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정도는 ??소설의 허구성??이라는 특징으로 봐줄만 하다.
물질적인 영혼이 7가지 천계를 지나 천사들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들은 다음 번 삶을 결정짓고 빛의 산으로 나아간다. 타나토노트에서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빛의 산??이다. 소설의 맨 마지막 장을 읽어보아도 천사들은 그저 나아가라고만 할 뿐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주인공의 영혼이 빛의 산으로 갈 때에도 ??이제 나는 안다. 저승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은... 그것은......??하고 바로 끝나버린다. 무성의한 작가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전적으로 독자의 해석에 맡기겠다는 작가의 배려라고 해야 할까. 내 선택은 후자이다. 영혼물질이 나아가는 곳을 불랙홀의 중심이다. 그곳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고 있고, 내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공간이 휘는 곡률이 무한대가 된다고 한다. 곡률이 무한대라는 말은 매력적인 것이다. 휘고, 휘고 또 휘어서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내가 생각해낸 답은 어머니의 자궁 속이다. 천사는 10달 후 당신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얘기한다. 10달이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영혼은 태아의 몸에서 새로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새로운 삶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모두 잊은 채, 10달 후 태어나 일생을 살고서는 또다시 그들의 앞에서 심판받게 될 숙명도 알지 못한 채. 천사는 역시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은 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