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없는원숭이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를 읽고
책의 선택 동기는 첫째 제목이고, 둘째 우리 조의 생물 조사 보고서 주제와 겹치기 때문이다. (우리 조의 주제는 ‘단순히 영장류의 한 종에 불과했던 인간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다. 이 책과 딱 들어맞는다) 작가는 인간을 제목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엔트로피를 읽었을 때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참 참신한 생각을 글로 표현해 놓았다. 그러니까 책이 될 수 있었겠지만. Introduction부터 약간 재미있는 생각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 및 유인원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우리는 모든 생물들을 비교 연구하고 특성을 알아내서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겠다는 강력한 사명 아래(그리고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여 그것에 …(생략)

뇌가 매우 거대하다. 성기도 매우 거대하다. 완전한 직립 보행을 한다. 도구를 사용한다. 사냥을 할 뿐만 아니라 과일도 따서 먹는 잡식성이다. 같은 종끼리 죽인다. 텃세권을 가졌다. 발정기가 없다. 유태보존을 한다. 모방능력이 강하다. 일부일처제이다... 쓰자면 끝도 없다.
과일을 따먹고 살았던 하등 영장류의 한 종이 털없는 원숭이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후의 탓이었다. 기후가 그들이 사는 숲에 안 좋게 작용하여, 주요 서식처인 숲의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먹이가 지천으로 널린 에덴동산이 작아짐에 따라 원숭이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작아지고 있는 에덴동산에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나가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을 것인가. 그들은 모험 - 밖으로 나가는 것을 택했다. 그럼으로써 서식지 감소에 따른 피해는 없어졌지만 새로운 행동 양식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 때 이후로 이 새로운 영장류에게 일어난 변화와 특성이 현재 우리의 특성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 변화는 점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지상으로 내려온 조상 유인원은 이미 크고 발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며, 좋은 눈과 발달된 손을 갖고 있었다. 또 영장류라는 특성상 사회 조직 체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사냥감을 좀더 잘 잡아야 할 필요성이 합쳐지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원래도 조금 할 줄 알았던 직립 보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으며, 자유로워진 손에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몇 만 년에 걸쳐 이루어졌을 이러한 진화 후에 털없는 원숭이는 ‘털없는 사냥하는 원숭이’가 되었다. 우리의 조상 유인원은 훨씬 쉬운 진화, 예를 들면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 같은 것을 진화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이미 육식 동물이었던 고양이과, 개과의 동물들이 아니라 숲에서 살다가 한참 뒤에 지상으로 내려온 잡식 동물이었다. 뒤늦은 이빨 진화로는 그들을 상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은 도구를 사용하는 쪽으로 진화함으로써, 꽤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 아니면, 이빨 쪽으로 진화한 쪽은 자연도태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나무나 돌보다 더 효과적인 살상력을 지닌 무기가 필요해짐에 따라 털없는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없는, 도구 만드는 원숭이’가 되었다. 무기의 살상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들의 종족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말은 즉 서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협동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에게 밀리는 판에 서로 죽이면 득이 될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에게는 협동성이 생겼다. 협동해서 사냥하다 보니 인구가 늘어나고, 필요한 고기 양은 많아지고, 사냥 기간은 길어졌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 때문에 그들은 떠돌이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컷이 사냥 후 돌아올 때까지 암컷과 새끼를 지켜주고 또 음식물을 저장할 장소가 필요했다. 기념비적인 정착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뇌가 그토록 커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유태보존 덕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태보존이란, 유아기 때의 특성을 자라면서 계속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유아기 때 가장 급격한 두뇌발달을 한다. 그래서 유태보존을 하게 된 털없는 원숭이는 살아남기에 보다 유리한 특성을 여러 가지 가지게 되었다. 가장 큰 특성은 호기심과 탐구심, 탐험심을 어른이 된 후에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타 영장류는 이러한 것들을 유아기 때에만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덕에 어른들이 고안한 특별한 기술들을 배울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성장기동안 우리는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른 어떤 동물보다 큰 혜택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유태보존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일부일처제의 초기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새끼가 어미에게 붙어있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암컷은 계속 기지에 갇혀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암컷의 짝이 사냥하러 오랜 기간을 나가 있는 동안 다른 수컷이 그 암컷을 건드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것은 큰 불화를 일으킬 수 있었고, 그래서 새로운 협동의 일환으로 털없는 원숭이는 일부일처를 시작했다. 현재 인간들이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털없는 원숭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학설들이 있다. 물속에서 살다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로를 구분하는 지표가 되기 위함이다, 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짝짓기할 때 서로를 더욱 잘 느끼기 위함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두뇌가 커지고 도구를 사용하지만 유인원과 타 육식 동물과는 신체 조건부터가 다르다. 우리의 몸구조는 달리도록 되어 있지 않다. 사냥감을 잡기 위한 달리기는 우리의 몸을 극도로 혹사시켰을 것이고, 우리는 더없이 올라간 체온을 조금이나마 식힐 방안을 찾았고, 그것이 털을 없애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당시 털이란 체온을 높이는 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밤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또한 피하지방을 발달시켰다. 우리는 털 대신 피하지방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기원에 이어서 짝짓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인간의 다른 영장류와 다른 점들의 대부분이 성적인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의 짝짓기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훨씬 강렬하고 오래간다. 또한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여자도 짝짓기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모든 것에는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그럼 이러한 것들의 이유는? 우리가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원숭이이기 때문이다. 털없는 원숭이의 수컷은 암컷을 놓아두고 사냥하러 떠날 때 암컷이 그에게 정절을 지키리라고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타 영장류와 달리 보다 강력한 암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만 발정기가 따로 없는 까닭을 말해 준다. 인간 여자도 난자가 배란될 때만 임신할 수 있지만, 자극이 오면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짝짓기의 횟수를 늘림으로써 서로에게 보상을 주고, 좀더 강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로 일부일처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타 영장류와 다르게 크고 부푼 코와 입술, 유방도 짝짓기를 통해 좀 더 강한 관계를 맺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여기서 직립 보행과 여자의 오르가즘이 연관된다.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우리들은 ‘걸어다닌다’. 그래서 짝짓기 후 암컷의 질에 들어간 정액이 흘러나올 염려가 있다. 그래서 인간 여자들은 짝짓기 후 기진맥진하여 누운 채로 잠이 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의 인간은 짝짓기와 ‘밤에 같이 잔다’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밖에도 이 책에만 등장하(리라고 생각하)는 매우 참신한 발상들이 많다. 인사나 경례, 악수의 의미, 미소의 의미, 사람들이 불안하면 어떠한 행동을 하는 이유, 서열 정하기, 인간이 하루 세 번 주기적으로 먹는 이유 등... ‘발상의 전환’.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 이런 생각이다. 기존의 세계관을 뒤엎는 새로운 시각. 이러한 책들을 볼수록 나의 고정관념이 조금씩 탈피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인간을 비하한 듯한 책임에 불구하고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나의 인간관이 잘못된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발상의 전환을 겪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