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파리대왕
독서실에서 책을 고르던 중 문득 파리대왕이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파리대왕? 독특한 제목에 나는 읽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더욱이 많이 들어본 듯한 문학작품인 것 같아 한 번 읽어 보았다.
태평양의 한 산호섬에 표류한 영국 소년들. 이 중 랠프와 새끼돼지는 소라껍데기를 발견하고 다른 아이들을 소집하는 신호로 소라를 분다. 랠프의 신호로 모인 아이들은 랠프를 대장으로 잭을 사냥부대장으로 선출하고 그들 나름의 평화롭고 민주적인 세계를 만들어간다. 아이들이 일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모습을 보며 문명국의 아이들답게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토의로 결정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고 특히 소라껍데기로 발언권을 얻는 방법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 중 유독 사납고 오만한 잭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불화의 근원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고 내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생략)

끽하려는 잭 패로 나뉘어지고 잭 패만의 야만적인 의식이 시작된다. 멧돼지 사냥 때문에 이성을 잃고 광분하는 잭 패가 몹시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의식의 강도는 점점 세어지고 결국 사이먼과 새끼돼지가 그들에 의해 희생된다. 이지적이고 차분하 사이먼과 새끼돼지가 죽임을 당했을 때 눈물날 정도로 끔찍했다.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순진한 문명국의 아이들이 그렇게 변모할 수 있는지 너무 놀랐다. 살인에 다다를 만큼 악해질 수 있다니...정말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잭 패는 랠프를 죽이려 하고 랠프는 숲으로 도망을 간다. 랠프가 도망하는 과정은 정말 아슬아슬했다. 더 읽기가 두려웠다. 만약 랠프가 붙잡히면 랠프의 인생은 끝인 것이다. 마지막 남아있는 이성이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잭 패는 숲에 불을 지르고 지나가던 영국 함정은 그 불을 보고 랠프와 아이들을 구해 준다. 아이들이 야만인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 랠프가 마구 울어대며 이야기는 끝난다. 나 역시 랠프가 느꼈을 좌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야만인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자신만이 홀로 남은 문명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참담하고 암울했을지 그 괴로운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수의 선의가 다수의 악의에 의해 무력해지는 모습은 내게도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멧돼지의 피를 보고 황홀해하고 광분하며 야만의 의식을 치르는 잭의 모습을 떠올리니 소름이 끼친다. 멧돼지 사냥이 어떻게 잭을 그렇게 야만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일 내가 그곳에 표류한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도 그렇게 잔인하게 변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내면의 잔인함과 악이 표출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나 자신도 내면 깊은 곳에 그러한 잔인함과 악을 품고 있을 거란 생각이 나를 더욱 두렵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을 야만성과 잔인성이 표출되는 일이 없도록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격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훈련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