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피터팬

피터팬
트랜스젠더를 싫어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성전환하길 원치않는 나는 현재의 내 성 정체성에 만족한다. 어쨌든, 내가 ??웬디??가 되고자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게 아닌 정신적 의미다.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한다. 그 끊임없는 변화야말로 젊음의 상징이다. 그런데, ??변함없는 젊음??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수능이 169일 앞으로 다가온 모의수능 전날, 난 ??피터팬?? 완역판을 펼쳐들었다. 지금 돌이키면, 그때 순열과 조합 정리를 했으면 수리 80점 돌파도 가능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어쩌랴, 이미 지난 일이고, 무엇보다도 메마른 내 감성을 오랜만에 해갈시켜준 책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후회는 없다. 뭐, 기대보다 나오지 않아 더 각오를 다지게 했다는 효과도 있었으니까 손해도 아니다.
회사일에 찌든 소시민인 달링, 아이들이 없어진 후 계속해서 창문을 열어놓는 달링부인에게서 내 부모님의 모습을 느끼는 …(생략)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후크를 해치고, 후크는 ??피터에게 나쁜 행실을 하게 만들었다.??는 최초의 승리와 함께 최후의 패배를 당하고 만다. 왜 피터라는 ??영원한 젊음??은 그들에게 관용을 선사하지 못했는가. 도대체 왜?

돌이키자면, 피터가 후크를 불구자로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그리고 피터의 ??전횡??이 해적들을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후크와 해적들이 피터팬과 그 일행에게 계속해서 적대적이었을까?

??현실??은 그게 아닌데. 물론, 현실은 ??그 것??이 아니다. 현실은 젊음이 좌절하고 늙음과 타협해야하고, 진보에겐 좌절은 없으되 시련이 상존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늙음은 젊음에 적대적인가. ??보수??는 ??진보??의 반대인가. 그 기성의 현실을 뒤틀고 싶은, ??순수한 갈망??이 피터팬의 1차적 발로였다면, 그 것은 또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때린다고 때리면 나도 때린 놈이 된다. 후크는 신사였고, 해적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결국, 그들이 ??악당??이 된 것은, 또 다른 ??악당??의 탓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본래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피터가 ??절대적으로 옳은 위치??라면, 마땅히 그들을 포용했어야 한다. 그들도 뭐가 옳은지는 판단이 가능한 인물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모험을 좋아한 피터팬은 그들을 전멸시켰다. 그가 절대적으로 옳은 위치에 있다면, 언젠가는 모두 그를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잠깐의 적대를 참지 못하고 ??전멸??시키는 것, 난 그것이 무서웠다. 그것이 현재 명색이 진보라는 자들의 일부에 팽배해있는, 혹은, 보수임에도 ??반수구 연대??라는 위치에 있는 적지 않은 자들이 가진 ??보수관??과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위치??라면, 자연히 그것은 포용될 수 있다. 그러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모험??을 하고, ??전멸??을 시키려 한다. 주장의 논박을 떠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증오나 경멸로 변해버리는 사상, 그 것은 변함없는 젊음 이전에, ??변함없는 현실??이다.

다행인 것은, 웬디는 피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웬디는 어른이 되는 것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엄마와 아빠에 대한 추억을 잃지 않고 끝내 기억해내고, 그들을 사랑했다. 그녀 자신도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피터에 대한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제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제인도 어릴 적의 웬디와 마찬가지로 피터의 네버랜드에서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허락했다. 웬디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가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난 오히려 거기서 ??진짜 진보??를 느꼈다. ??젊음??은 물론 진보의 상징이다. 하지만 진보의 근원은, 바로 ??나아간다.??라는 동사이며, ??자란다??는 것이다. 영원히 젊음을 고수한다는 것도, 사실 또 다른 보수성이다. 허구헌날 난 30살이다. 30살이다. 외쳐봐야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이는 언제나 49, 50, 60이 되어가니까. 오히려 그 자신의 젊음을 고수하려 하지 말고, 늙음을 인정하고 그 주위에 ??변해가는 것들??과, ??생겨나는 것들??의 새로운 ??젊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진보적인 일이다. 언제나 향수에 빠져 사는 것보다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주위의 젊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젊음에 영원히 간직할만한 가치를 전한다면, 그건 ??변화하는 젊음??인 동시에, ??변치 않는 진보??이다.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가치를 좌절당하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지금도 나의 무수한 가치가 많이 훼손되는데, 정말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많은 가치들이 훼손될지. 그런 의미에서 웬디는 내게 새롭게 다가온다.

초등학교의 언제였던가, 그때 문득 ??지금이야 어른이 되고 싶지만, 결국 어른이 된 이후엔 다시 이 때가 그립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그 말이 맞아 떨어질수록 서글퍼진다. 이제 어른이 되는 날이 2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어른이란 위치를 두려워하게 되고, 점점 더 세속적으로 변해간다.

모르겠다. 피터팬이라는, 어떻게 생각하면 역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될 만하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이상향으로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 나는 지나친 이데올로그는 아닐까 두렵다. 아니면, 이런 것들을 느끼라는 작가의 숨겨진 뜻을 너무 적나라하게 읽어버린 것일까. 2가지 모두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아이들의 동화에서마저 그런 숨겨진 뜻을 설파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이나 그때나 변치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싫고, 나 자신이 지나친 이데올로그라는 사실도 바람직하지 못한 사실이다.

어쨌든, 난 웬디가 되고 싶다. 피터라는 ??편협한 진보??와, 후크라는 ??불쌍한 보수??를 넘어, 웬디와 같이, ??진보??를 전달하면서도 그 자신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이,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이, ??부모??가 될 수 있는 이, 나는 그렇게 되고 싶다. 작년에 담임선생님으로 뵈었던 김영호 선생님과 같이, 그런 ??웬디??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