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
나는 인터넷이나 신문에서의 추천도서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책 한 권을 고를 때마다 곤혹을 치르곤 한다. 하지만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더욱 더 큰 고통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판매량이나 추천을 따라 책을 선택을 하게 되곤 한다. 해변의 카프카란 책을 접하게 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서점의 판매 순위에서 제법 상위에 랭크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실의 시대의 작가가 쓴 책이라는 것(당시에는 상실의 시대를 읽지는 못했지만 그 명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에 선뜻 지갑을 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변의 카프카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상실에 시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이 가지고 있는 묘한 마력으로 인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러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무언가 답답할 때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펼쳐…(생략)

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단 주인공과 내가 처한 상황에 조금의 공통점도 쉽게 찾을 수 없더라도. 주인공이 비로소 새롭게 자라나면서 나-이제는 곧 어른이라고 불리게 될-에게 주어진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카프카는 해변에 놓여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치 어떤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명언을 우습게 일그러트린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라면 그 어떠한 말도 더 함축적이고 완벽하게 그 책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카프카는 어린이에서 조금씩 어른이라는 세상 속에 발을 내딛게 되는 15살의 아이인 것이다. 마치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인 해변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등뒤에는 육지가 펼쳐져 있고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의 삶은 동성과 이성,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이루듯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지럽기만 하다.
결국 카프카는 비현실의 세계에서 현실에 세계로 돌아온다. 마지막의 구절이 아주 인상깊이 남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카프카가 문을 건너 현실로 돌아왔듯이 15살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 속의 일부로써 카프카는 가장 터프 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해변을 지나 바다로 향했다.
상실의 시대,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주인공은 와타나베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실의 아픔을 그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그 상실을 그려내고 그 상실의 문제를 -우정 또는 사랑으로- 여러 인물들이 자신의 성격에 따라 해결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실의 아픔과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라난다. 좀더 완벽한 인간관계를 알아가게 되고 결국은 슬픔을 이겨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리는 와타나베가 어디 있는지를 묻자 대답한다. 나도 내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아픔을 치유해 가면서 결국은 그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남긴 여운 속에서 깊이 사색하던 중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좋아하고 언제나 곁에 두었던 작품인 어린왕자를 그의 작품에 오버랩 시켜 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어린왕자는 그의 작품과 같은 문제는 성장의 문제에서 서로 다른 해답을 내어놓는 작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주인공인 `나`는 이미 어른이다. 하지만 어린왕자를 만나 자신이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순수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린왕자를 통해 재배열하게 된다. 어린왕자는 마치 피터팬 같은 존재이다. 햇빛과 약간의 물, 그리고 미소로만 살아가는 듯한 그에게는 영원한 `소년`으로서의 삶이 부여되어있는 듯 하다. 순수라는 단어를 그대로 형상화시킨 듯한 어린왕자의 모습에 한때는 푹 빠져버려 나는 피터팬 신드롬에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어린왕자에서의 해답은 이런 것이 아닐까. 허영덩어리이고, 주정뱅이이고, 혼자만의 왕이며, 자신은 중요한일을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실업가 같은 모습들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홀로 소년으로써 순수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는 다르다. 터프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이 되어서 이겨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래폭풍을 피하려고 해봐야 부질없는 일일뿐 눈을 감고 모래폭풍을 지나가면 새로운 세상일 것이라고 말한다.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하면서 그 상처에 연고를 바르며 참아내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생각들이 그저 한 사람이 좋아하게 된 책들을 억지스럽게 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욕심에 의해 작가들이 글 속에 표현하려고 했던 주제가 일그러져 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상 속에서 나는 마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꼈다. 우려대로 작가의 의도를 무시한 채 작품을 내 속에서 크게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어린왕자,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이 세 작품을 몇 번이고 읽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작품을 읽듯 새로운 느낌으로 항상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 그 작품들의 의미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일 때 내가 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를 생각하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