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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저자 : 최명길
출판사 : 한길사
바위를 뛰어넘는 달걀..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속담이 있다. 흔히들 무모한 도전이나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일을 할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사람들의 계란이 바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작고 약하다한들 계란은 부화하고 본능에 따라 또다시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것만큼 강한게 무엇이 있을까? 바위가 강하다한들 결국 그것은 형체조차 없는 바람에 풍화될 것이고, 닭의 모래주머니에 들어가 닭이 알을 다시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결코 달걀은 약한 것이 아니다. 혼불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세상 만물중 그 어느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수 없다는 것이었다. 혼불을 처음 접했던 초등학교 6학년시절 나는 처음 보는 단어들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고 따스했던 것은 최명희님의 우리의 모국어를 살리고 싶다던 마음…(생략)
있는데 그녀가 바로 청암부인의 손자며느리인 효원이다. 그녀는 시집온 첫날 남편에게 소박을 맞고 혼자 밤을 지샌다 그녀가 꼿꼿히 앉아 밤을 지새던 장면에서 나는 숨쉬기조차 힘든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효원이 자신의 손으로 족두리와 혼례복을 벗고, 버선을 벗어냈다. 그 순간 나는 말못할 이상한 감정에 휩쓸려다. 효원에 대한 연민, 존경, 부러움...... 쉽게 자신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고통이상의 두려움과 참담함에 빠진다. 나는 효원이 버선을 벗어 던졌듯이 내 주변의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질 용기가 있을까? 청암부인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효원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혼자로써의 삶을 살아갈 용기가 내게는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어떤 답도 내놓지 못했다. 21세기 최첨단의 세계를 걷고있으며 강인한 여성상을 선호하는 지금의 내가 한 세기전의 그녀들보다 강하지 못한 것이다.
청암부인은 자식이 없었기에 양자를 두었다. 첫 아들 이기채와 둘째 기표 셋째 기응이 그들이다. 사건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자식중 기채의 아들 강모와 기응의 딸 강실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비록 그들 자신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라지만 엄연히 강모와 강실은 한집안의 식구이며 사촌지간이다.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던 중 강모는 효원과의 억지 결혼을 하게 되고 효원은 첫날밤에 남편에게 소박맞는 처연한 여인이 된다. 강모의 강실에 대한 사랑이 커져만 가던 어느 날 강모와 강실은 굿을 하던 틈을 타서 일을 저지르고 강모는 효원에게 아들만을 하나 남기고 잠적해버린다. 동병상련이라던가? 효원에게서 청암부인은 동질감을 느끼고 아낀다.
어느 날 강모는 자신의 복잡해져 가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강태와 만주로 떠나버린다. 여기서 이 소설 최대의 악인이자 가장 현대의 이기와 뱃속 차리기로 똘똘 뭉친 여인 옹구네가 등장한다. 그녀는 춘복을 이용해 이씨 집안을 삼키려든다. 그녀에게는 양반도 도덕도 무었도 없다. 이씨 집안 인물들과 가장 대조되는 조연이다. 어느 날 춘복은 쓰러진 강실을 들쳐업고 농막으로 들어가 버린다. 강실은 이미 쇠약해져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춘복이다. 일말의 사건들이 효원의 귀에 들어가고 효원은 춘복의 아이를 가진 강실을 숨기고 일을 해결하고자한다.
박경리의 토지에서의 작가는 사건들은 마치 하나의 선상에올려 놓듯 전개했다. 하지만 최명희씨는 사건을 부분 부분이 빠진 퍼즐처럼 다루었다, 그렇기에 내가 일전에 이소 설을 읽었을 때 그처럼 혼란스러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그 비워진 퍼즐조각의 그림을 떠올릴 만한 나이가 되었다. 물론 선명한 그림은 아니다. 어딘가 이지러지고 중간 중간 검은 반점이 되어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매력이다 언제든 다시 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 자체가 미완성이기에 바위를 뛰어넘는 달걀인 것이다.
혼불을 읽으며 내가 느낀 안타까운 점은 그 위험한 사상을 비쳐 보이던 강모와 강태가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또 강모가 자신에게 아들 하나를 남기고 떠난 후 불타오르던 한이 있었음에도 효원은 어떠한 복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일인가를 저지를 듯한 암시는 작품 초반에서부터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어떠한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것이 이 작품이 미완이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는 17년간 이 책에 모든 것을 바쳤다. 혼불을 완성하기 위하여 암을 치료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녀의 노력은 대단했다. 그녀는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표현할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해 며칠을 개울 옆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또 그녀는 창작을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는 것 같다고 했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가 작품 곳곳에 남긴 수많은 지식들, 한편의 판소리를 듣는 듯한 그녀의 문체들은 분명 그녀의 생명을 받아먹고 나온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창작이 바위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 듯한 고통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혼불은 칼의 양면을 닮았다. 전통과 민족성을 다루던 것은 막 새로 깨어 나는 짙푸른 밀림의 모습이라 하면, 다른 면에는 모든 것을 말려 죽일 듯한 사막이었다. 시체가 된 부서방 계집애의 얼은 얼굴을 가위로 잘라내던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 곳, 계집아이의 구멍난 얼굴로 밥을 흘려보내던 어미의 참담함이 담긴 그곳에는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시대가 있었다. 자신의 부친의 시신을 창암부인의 묘를 파헤쳐 그 옆에 누여 놓음으로써 양반이 되리라 생각했던 춘복의 그 삽질은 사막의 잔인한 모래폭풍이었다.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이처럼 참혹한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던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결국 최명희씨는 아무 말 없이 떠나버렸다. 그녀의 심중을 파악하는 것은 혼불을 읽고있는 우리의 몫이다.
창암부인의 혼불이 지붕위로 빠져나가던 그 순간의 혼불만이 작가가 말한 혼불의 다가 아니다. 시대의 혼불, 역사의 혼불, 나아가 이 나라 조선의 혼불을 그녀는 말하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믿는다. 작가는 역사의 폭풍을 살아가던 댤걀 같이 나약한 여인들이 언젠가 바위를 뛰어넘기 위한 그 무엇인가를 혼불이라 칭했을 것이다. 사전에 나와 있지도 않은 말을 그 소설에 담은 것은 분명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나는 이제 막 "혼불" 이라는 이름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내 손으로 심었다. 그 것은 자라서 나의 혼불이 될 것이며 달걀일 뿐인 나를 바위를 뛰어넘는 새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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