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깊은 집을 읽고나서

마당깊은 집을 읽고나서
아이의 눈은 세상을 투영하는데 있어 가장 깨끗하고 가장 바르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가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소설을 전개해나갈 때가 있다. 순수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자신을 속이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는 세상에 대한 편견조차 없다. 단지 소설을 이끌어가는 아이는 그런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만을 나타낼 뿐이다. 때문에 이 호기심많고 깨끗한 아이의 눈은 사건의 전황을 가장 객관적이고 친숙하게 표현하는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 어른의 편견에 따라 흘러가는 제멋대로의 스토리가 아닌 사건에 대한 아이의 ‘왜’라는 물음에 답하며 연결되는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마당깊은집」이라는 소설 역시 그런 효과를 노렸는지 이미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나라는 존재가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생략)

살고 있고 바깥채는 전쟁 때 이곳으로 피난을 와 자리 잡은 셋방사람들이다. 부유한 삶과 가난한 삶이 마당깊은 집 이 한 공간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의 삶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대조시켜 6.25전쟁이 끝난 후 우리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더욱 생생히 그려내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 이렇듯 마당깊은 집은 단순한 길남이가 활동하는 무대가 아닌 작가의 주제의식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멋진 공간이 된다.
「마당깊은집」전후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가족과 민족. 이 비슷한 공간을 작가는 효율적으로 사용해 이 전후소설과 성장소설의 경계를 허물어트렸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성장하는 길남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작가는 전쟁의 피폐한 우리 민족의 모습들을 그려냈고 때문에 이 소설은 모순되게도 객관적인 모습과 서정적인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소년이 성장을 하며 보고 듣는 그 모든 모습들이 옛 1950년대 모습이고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통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런 옛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 남이가 자라면서 보고 듣는 것은 때론 셋방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어려운 삶을, 때론 그와 반대로 주인집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통해 자유주의가 들어선 이후 넘어온 미국문화를 즐기는 상류층들의 여유로운 삶을 또 정태씨의 사상과 첩자들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경찰들을 통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상가들에 의한 남북의 이념충돌을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길남이는 이 모든 것들을 그려내면서 그 무엇도 속이고 왜곡하지도, 결말을 단정짓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보고 들은 것을 말할 뿐이고 작가는 그것을 그대로 적고 있을 뿐이다. 바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아이의 눈이 가지는 효과인 것이다.
때문에 읽다보면 새삼 이 김원일 작가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참으로 부러운 글솜씨를 지니고 계신다. 그 당시의 거대한 사회적 아픔을 축소시키고 축소시켜서 결국은 그 작은 무대인 마당깊은 집에 다 넣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주인공은 단지 보고 듣는 것을 전할뿐 모든 것들은 주위에서 다 해주니 말이다. 전쟁 후 우리 민족이 겪어야했던 서러움과 경제적 어려움은 셋방 사람들에게, 미국을 등에 없고 활기를 치던 부유층들의 문란한 생활은 주인집 사람들에게, 남북 이념대립은 정태씨에게 넘겨버리고 자신은 길남이라는 한 소년이 되어 자신이 낑낑대면서 그것들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알아서 그 상황을 그려주고 표현해주고 단지 작가 자신은 그것을 바라볼 뿐이니, 얼마나 편하고 쉬운가. 이것이 바로 작가의 노련함이라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아이의 눈이 지니는 효과는 이 효과 말고도 또 다른 효과를 불러온다. 바로 대중성이다. 이소설의 경우 무대 배경도 좁고 이념대립에 대한 큰 언급도 없는데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 전체적으로 읽기에 굉장히 평이하다. 즉, 머리싸매고 읽은 소설은 아니라는 소리다. 사람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책을 읽으려하지 마니아가 아닌 이상 누가 머리 싸매고 끙끙거려야할 소설을 찾아서 읽으려하겠는가 소설이 쉽고 내용이 재미있을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그런 점에서 이 「마당깊은집」은 대중성을 얻을 수 있다. 거기다가 이 소설은 몇 년전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서 선정한 도서로도 알려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으니 소설의 대중성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큰 어려움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으니 누구라도 마음 편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인 것만은 확실하다. 거기다 마음 편히 읽고 얻어가는 것은 많으니 일석이조가 아닐수 없다.